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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Nov 04. 2022

계획 인간은 피곤하다.

100일 글쓰기(39일 차)_계획 vs 즉흥

초등학교 방학 때가 되면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학교에서 선생님이 꼭 시키는 것이 있다. 바로 '하루 일과표'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동그란 시계를 하얀 종이 위에 그리고 시간을 열심히 나눈다. 제일 먼저 잠자는 시간을 정하고 밥 먹는 시간을 빼면 '공부' 하는 시간과 '노는' 시간이다. 학생들 간에 특별히 별나게 일과표를 짜는 아이들은 드물다. 다 거기서 거기 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이다. 방학이 시작하고 나서 일주일간은 열심히 계획표대로 한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면 흐지부지 된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그렇다. 하지만 안 그러는 아이들도 가끔은 있다. 그게 바로 나다. 방학 전에 세운 일과표를 방학이 끝나는 날까지 지켜려고 애를 쓴다. 왜냐하면 나는 즉흥적인 것에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즉흥적인 것에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한시도 멍하게 있지를 못하고 뭔가를 하고 있어야 한다. 오십 년 동안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인생이 피곤하다. 주말이 가까워지면 주말 동안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 때로는 스마트폰 일정표에 메모를 한다. 남들은 주말에 소파에 하루 종일 걸쳐 누워서 퍼져 있는다고 하던데, 나는 그걸 못한다. 몇 년 전에 친구와 '템플 스테이'를 하러 지리산에 있는 '상원사'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의 프로그램 중에 그냥 햇살 아래에서 몇 시간 동안 '멍 때리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뇌'에게도 쉬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느리게 걷기'를 통해서 몸도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연습했다. 정말 좋은 힐링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회사를 그만두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자 했다. 하지만 '개 버릇 남 못준다'라고  쉽게 바뀌지를 않는다. 9월 한 달 동안 '제주도 한 달 살면서 올레길 걷기'를 계획할 때도 떠나기 며칠 전부터 나는 일정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 달 치 움직여야 할 동선을 체크하고 가장 효과적인 숙소를 잡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주도에 있는 한 달 동안에서 변수가 발생할 때마다 일정을 업데이트하고 26코스를 계획한 일정 내에 끝내기 위해서 매일 밤 고민하고 업데이트를 계속했다. 심지어는 태풍이 불어오는 날에도 나는 올레길을 걷고 있었다. 계획한 일정을 맞추려고 하는 그놈의 '계획 인간'이 나를 자유로운 삶에서 속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친구와 경기도 북쪽으로 1박 2일 캠핑을 가기로 했다. 가능하면 별도의 준비를 하지 않고 일정도 짜지 않고, 먹을 것도 정하지 않고. 뭘 하고 보낼지 정하지 않고, 그냥 즉흥적으로 모든 것을 해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의 '계획병'을 개선하기 위한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이제는 살아온 방식을 조금은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번 해보려고 한다. 한 달 전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했던 태국 골프여행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을 확인해 보았다. 평소 같으면 출국할 때부터 입구 할 때까지의 모든 동선을 확인하고 일정을 직접 계획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대신 친구들 중에 누군가는 일정을 짜고 동선을 확인하고 했지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다가오는 캠핑도 굳은 의지를 가지고 그렇게 즉흥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물론 백 프로 장담은 못하지만 해 보려고 한다.

다가오는 캠핑도 굳은 의지를 가지고 그렇게 즉흥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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