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기는 하지만 송년회 횟수가 줄었다. 코노나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내스스로 채식으로 전환하고 나서는 가능하면 술자리, 특히 고깃집 송년회는 피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고기는 피해 다녀도 술은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고 있다. 일요일 저녁식사에 송년회 일정이 잡혔다. 대학에서 함께 영어 동아리를 하던 친구들이 서울 강남 시내에서 만나기로 했다.
평소에는 2개월에 한 번씩 만나서 등산도 하고 골프 스크린도 함께 한다. 워낙 오래된 친구들이다 보니 편한 사이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용인 전원주택에 사는 친구네 집에서 송년회를 했는데 올해는 밖에서 하기로 했다. 오후에 스크린 골프를 치고 저녁식사 하는 걸로 일정을 계획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주말 요리 강습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저녁식사만 조인하기로 했다.
요리 강좌 마지막 시간에 저녁식사 장소가 카톡으로 알려왔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낙원 타코'라는 식당이었다. 앗! 식당의 이름에서 왠지 무알콜의 기운이 느껴지면서 싸한 느낌이 들었다. 먼저 모인 친구들이 식당을 정할 때 아마도 나의 '채식'을 고려해서 대놓고 고깃집을 가지는 않아도 최소한 음주는 할 걸로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요리학원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라 학원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합류를 했다. 건물 이층에 위치한 식당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꽉 찼다. 대충 훑어보니 20대 초반의 여성이 손님의 대부분이다. 우리 일행이 평균 연령을 꽤나 높이고 있었다. 요즘 강남에서 잘 나가는 핫플이라고 후배의 딸아이가 엄마 친구들의 수준을 고려해서 추천해준 거란다. '우리가 수준이 있기는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여하튼 고마운 일이다.
식당의 이름에서 왠지 무알콜의 기운이 느껴지면서 싸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평소 중년 남성들의 송년 회식이라면 의례 전집에서 막걸리 아니면 횟집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정신줄을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송년회는 평소와는 느낌이 전혀 다는 곳에서 모둠전이나 모둠회 대신에 멕시코 음식을 시키고 막걸리나 소주 대신에 자몽에이드를 주문했다. 장소와 분위기가 어색하고 낯설기는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스스로 대견하고 고급져 보일거 라는 자기 최면같은 것이 작용하는거 같기도 했다.
평소 멕시코 음식을 맛볼 기회가 적어서 이때다 싶어 여러 종류의 음식을 주문했다. 낙원 파히타, 쉬림프 퀘사디아, 아보카도 샐러드, 토르티야, 치즈 프라이즈 접시가 테이블로 전달되었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로 연신 배달 로봇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서빙 로봇을 실제로 본건 처음이라서 신기하기도 했다.
맨 정신으로 남자들이 수다를 떨려니 어색하기는 했지만 건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자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주위의 다른 손님들은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음주하지 않고도 이렇게 오랜 시간 한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살아온 친구들에게 덕담도 하고 내년에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자고 다짐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후배가 챙겨준 탁상용 달력도 선물로 받았다. 매달마다 후배의 딸아이가 창작한 노래와 동화책이 QR코드로 연계된다. 고맙다! 선물 준 후배도 고맙고, 멋진 식당 추천해 준 후배의 딸내미도 고맙고, 함께 해준 친구들도 고맙고, 2022년 한 해를 고마운 마음음으로 마무리해야겠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을 열어보니 맥주 한 캔이 보인다.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