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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Dec 17. 2022

대학로 도서관, 함박눈...

100일 글쓰기(81일 차)_눈 오는 날

눈이 내리는 날이면 강아지들은 밖에서 뛰어다니며 좋아한다. 강아지에게 감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발이 차가워서 '앗 차가워, 앗 차가워' 하면서 뛰는 거 같기도 하다. 나도 눈이 내리면 강아지 처럼 좋아한다. 집에 있다가도 밖에 나가고 싶고, 산에 오르고 싶기도 하다. 하얀색이 주는 순수함 같은 것 때문이기도 하고 눈이 주는 포근한 느낌 때문이기도 하다.


흰 눈이 내리는 날에 등산을 하면 나뭇가지에 소복이 쌓이는 '눈꽃'을 볼 수 있어서 좋고 좀 더 변덕스러운 날씨에는 운 좋게 '상고대'도 볼 수 있어서 좋다. 아무도 밟지 않은 등산로에 소복이 쌓인 눈길을 걷는 재미는 덤이다.


하지만 눈이 내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당연하다. 각자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군대에 있는 모든 장병들은 눈이 내리면 부대의 눈을 치우기 위해 특별조를 편성해야만 한다. 하루 종일 내리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눈을 치워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한때는 '눈'이 징그러울 때도 있었을 것이다.


사회에서는  도로나 보도의 눈 치우는 일들을 공무원들이 한다. 야간에 눈이 많이 내리기라도 하면 비상상황에 돌입한다. 눈 내리는 날이 누구에게는 낭만이 되고 누구에게는 현실이 된다. 같은 눈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서 그렇게 다양하게 맞아들인다.



크리스마스 전날에 함박눈이라도 내리면 많은 젊은이들이 광분을 하고 각자의 짝을 만나 사랑을 속삭인다.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생이 되어 취업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도서관에서 열공하던 시절이 있었다. 방학 기간에는 학교도서관 보다는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있는 '학산 도서관'을 친구와 자주 이용했다.


크리스마스 전날, 들뜬 분위기의 인파들과 대학로 상점들을 통과해서 도서관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칭찬하면서 스스로를 위안하며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창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군대에 있을 때 느낌이 나서 멈칫, 나가서 눈치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잠시 뒤로 하고 바로 서서히 도서관 마당으로 떨어지는 눈송이들이 낭만스러워 보이기 까지 했다.


그때 친구가 내게 말했다. " 난, 여자 친구가 밖에 와 있어서 그만 가봐야겠다. 크리스마스 잘 보내라."  갑자기 배신감이 느껴졌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도서관에서 잘 지낼게 뭐가 있겠냐. 날 버리고 혼자 여자 친구 하고 데이트를 하겠다는 그놈이 미웠다, 아니 그보다는 부러웠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벌써 30년도 더 지난 그날의 함박눈과 감정이 아직도 또렷이 기어 나는 걸로 봐서는 그날의 감정이 내 머릿속에 송곳처럼 박힌 듯하다. 그 친구는 아직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다. 그때 대학로에서의 여자가 아닌 딴 여자랑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가끔은 나도 그때 도서관을 박차고 나가서 데이트나 할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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