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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Dec 28. 2022

어쩌다 김치 깍두기

100일 글쓰기(92일 차)_이름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 불리는 별명은 대게 이름에서 비롯된다. 특히 이름에 두 글자가 어떤 단어를 연상시키면 백발백중 그 단어가 별명이 된다. 그래서 나의 초등학교 때 별명은 김치깍두기, 김치찌개, 총각김치로 친구들의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다. 30년이 훌쩍 지난 초등학교 동창회에서도 친구들은 나를 기억한다. '아, 김치, 김치' 하면서 말이다. 


허긴 외우기는 쉽다. 외국사람들도 다 아는 단어가 '김치' 아니던가. 그래도 어릴 적에는 그 이름이 싫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버지에게 왜 이름을 그렇게 지셨냐고 따져 물었다. 내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치안본부'에서 근무를 하셔서 사무실 동료직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셨다고 한다. 돌림자가 '현'이다 보니 '치현'으로 할지 ' 안현'으로 할지 말이다. 결국은 다스릴 치(治), 나타날 현(顯)으로 낙찰되었다.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 불리는 별명은 대게 이름에서 비롯된다.


'나타나서 다스린다.'는 표현이 그럴듯했다. 이름은 정치를 할 팔자인데 난 정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스리긴 뭘 다스린담, 내 마음이나 다스려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어찌 되었던 그렇게 이름을 정하고 나니 성까지 합치면 '김치...현'이 되었고 결국 아이들의 놀림감이 된 것이다.  나이가 들다 보니 이름을 갖고 놀리는 사람은 없어졌지만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발음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식당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고 예약자 이름을 알려주면 백발백중 상대방은 이름을 제대로 인지를 못한다. '김지현'이나 '김치연', 아니면 '김지연'이 내 이름이 된다. '치' 자 나 '현' 자 모두 발음이 세기 때문이다. 나는 몇 번을 내 이름을 한 자 한 자씩 끊어서 알려주다가 포기하고 그냥 '김지연'이 된다.


발음이 어렵다 보니 미국 어학연수 기간에는 '크리스토 폴'이라는 천주교 세례명인 '크리스 킴(Chris Kim)'라고 외국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처음에는 '치현(Chi Hyun)'이라는 발음을 몇 번 발음하다가 도저히 따라 하지 못하는 그들을 보고 바로 포기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 근무한 독일회사에서는 독일인 상사는 항상 내  한국 이름을 부른다. "헤이, 지연 (Hey, Jiyoen)~" 하고 말이다. 


젠장! 그냥 '크리스'라고 부르라고 해도 굳이 안 되는 발음으로 그렇게 부르면 난 또 '김지연'이 된다. 다음 생에는 그냥 '김지연'으로 이름을 지을까 생각도 해봤다. 한 명의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 보니 나는 더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발음하기는 어려워도 나는 지금의 내 이름이 좋다. 살면서 한 번도 똑같은 이름을 마주친 적인 없어서 더 좋다. 

발음하기는 어려워도 나는 지금의 내 이름이 좋다.


* 배경사진: 인터넷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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