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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Jan 18. 2023

부고, 1년이 지나고

100회 글쓰기(11회 차)

천주교인들은 제사를 지내는 집도 있고, 그렇지 않는 집도 있다.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8형제의 맏며느리였던 어머니는 결혼 후에 오랫동안 제사를 지내셨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인가 천주교 신자로서 어머니는 '로사', 아버지는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았고 추석이나 구정등의 명절 때에는 제사 대신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하지만 조부모님 기일에는 조금은 애매하지만 몇 가지 제사상을 준비해서 '제사'반, '기도'반으로 지냈다. 아버지의 첫번째 기일을 맞이해서 제사를 지내야 할지, 말지를 고민했다. 결국은 어머니와 상의해서 상차림 없이 '연도 의례(기일에 하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을 하기로 했다. 참석자들도 단출하게 직계가족까지만 모이기로 했다.

상차림 없이  '연도 의례'만 하기로 했다.


일주일 전에 어머니와 함께 기일 때 쓰려고 남대문 꽃시장을 방문했다. 남대문시장은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추억이 많은 곳이다. 옷사기 싫어했던 꼬맹이의 투정에 화가 난 아버지가 나의 뒤통수에 펀치를 날린 곳은  남대문 시장 육교에서였고, 한장의 사진처럼 머리속에 박제된 허름한 냉면집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생전 처음 먹었던 함흥 냉면의 추억도 그곳에 있다.


꽃을 사고 나오는 동안에도 계속 추억들이 떠올랐다. 꽃(조화)이라면 동네 '다이소'에 가면 얼마든지 있지만 어머니는 남대문 시장을 고집했다. 물론 그곳에는 생화뿐만 아니라 많은 종류의 조화도 싼값에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예전에 아버지와의 추억들이 우리를 그곳으로 오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나도 어머니와 데이트도 하고 아버지와 함께 했던 남대문시장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최근에 <아버지의 해방일지, 2022년, 정지아 지음>를 읽으면서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는 실제의 아버지와 몇 퍼센트나 일치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문상객들을 통해서 그녀가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삶들을 만난다. 가족이라고 해서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는가, 배우자라고 해서 어떻게 상대방의 생각과 생활을 모두 알 수 있겠는가.


어린 시절에 서울에 무작정 상경해서 생고생하다가 어렵게 먼 친척집에 얹혀살면서 밥벌이를 배우고 어찌어찌하다가 공무원이 되었던 젊은 날의 스토리들. 30년 공무원 생활중에 어머니를 앞장 세워 오락실, 기원, 사격장, 주차장을 운영했던 시절들. 정년퇴직 후에는 사업한다고  벌어놓은 재산 몽땅 날리고 환갑이 넘은 어머니를 십여 년이 넘도록 일터로 내몰았던 내 기억 속의 아버지.


내가 정말 아버지의 삶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아버지의 삶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 과연 나의 아버지도 죽음을 통해서 평생 짊어진 책임을 편안하게 놓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기억 속에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속을 썩인 사건들이 꽤 존재하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글씨를 멋지게 쓰셨던 아버지의 자필 문구들을 식탁 유리 밑에 깔아놓고 쳐다보기도 하고, 집안 여기저기 남아있는 추억을 기억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분명히 어머니의 기억 속에는 존재한다. 역시나, 나는 아버지를 백 프로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지고 1년이 흘렀다. 다행인 것은 어머니는 큰 병 없이 씩씩하게 잘 살아내시고 있고, 아침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들에게 책을 낭독해서 카톡으로 보내주는 것이 너무 고맙다. 물론 선친도 고맙다. 하나뿐인 아들이 잘 성장하고 잘 나이 들어갈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

하나뿐인 아들이 잘 성장하고
잘 나이 들어갈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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