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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Feb 11. 2023

지하철 할머니

100회 글쓰기(22회 차)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올린 할머니 한분이 창동역을 헤매고 있다. 창동역은 1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역으로 할머니가 살고 있는 상계역에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다. 그녀는 4호선 상계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창동역에 내려 승강장 앞쪽서 뒤쪽까지 걸어가면서 승강장 벽면을 흘깃흘깃 쳐다보고는 다시 반대편 승강장으로 이동한다.

할머니 한분이 창동역을 헤매고 있다.

반대편 승강장에서도 앞쪽 끝까지 갔다가 뒤쪽 끝까지 걸어가기를 반복하던 중에 주머니에서 갑자기 스마트폰을 꺼내서 벽에 걸린 액자를 찍고는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그건 마치 산속에서 희귀종 새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조류학자가 나뭇가지 위에서 모처럼 찾은 새를 발견하고는 만족해하는 표정이다. 그녀는 다시 창동역 1호선 쪽으로 이동해서 다시 앞쪽 승강장에서 뒤쪽 승강장을 훑고 지나간다.





그녀의 이름은 강미화 여사이다. 나의 어머니이다. 어머니에게 최근에 갑자기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지하철 승강장에 걸려있는 '사랑의 편지' 액자를 사진 찍어 나에게 보내시는 것이다.  그 액자에는 시민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글들이 적혀있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잠시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읽을거리를 주기적으로 바꿔가면서 제공하고 있다.


올해 2월이 되고 내가 '브런치'에 올린 <잠시 빌려온 것일 뿐, 2022.12.20>이라는 글이 담당자 눈에 띄어 '사랑의 편지' 액자에 포스터로 제작되고 게시되기 시작했다. 지하철 승강장에 게시되기 전에 담당자는 포스터를 제작해서 내게도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인터넷에 액자를 주문하고 한 개는 내 방에 걸고, 다른 한 개는 상계동 어머니 집에 걸었다.


아직까지 글을 써서 돈을 벌어본 적이 없지만 액자에 인쇄된 글 하단부에는 내 이름과 나란히 '강연자, 작가'라는 나를 대변해 주는 직업이 표시되어 있다. 인생 후반전은 남들 앞에서 강사로 강연도 하면서, 책 읽고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는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포스터를 보고 후배가 '강연자 씨는 누구냐, 혹시 같이 글을 쓴 사람이냐'라고 물어 와서 당황하기는 했지만 남은 생은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런 소망을 품고 글을 쓰던 중에 사람들 앞에 글이 걸리니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신다. 그게 뭐라고,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신다. 시내 나갈 때마다 승강장을 배회하고 액자가 없으면 아쉬워하고 있으면 사진을 찍어 내게 전송한다. 그게 바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다. 그 따쓰한 마음이 나에게로 전달되어 올 겨울이 따뜻하다.  

따쓰한 마음이 나에게로 전달되어 올 겨울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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