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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Feb 14. 2023

잘난 놈, 못난 놈

100회 글쓰기(23회 차)

친구 중에도 무탈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친구도 있지만 뭔가 잘 풀리지 않는 친구도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깝게 지낸 사이라면 지금 잘나가고 못나가는 것을 갖고 서로를 평가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만난 친구들은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술자리에서 이 새끼, 저 새끼 하면서 동등한 위치에서 저마다 갖고 있는 스트레스를 푼다. 그러려고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다.

친구 중에도 무탈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친구도 있지만
뭔가 잘 풀리지 않는 친구도 있다.


사회에서 만난 동료나 선후배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것을 오래된 친구사이에는 거림 낌 없이 이야기하고 가족들 흉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상대를 화나게 만드는 친구도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풍족하게 살았고, 남들 대학졸업해서 밥벌이에 나서야 할 때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으로 석사, 박사 취득하고 일찌감치 지방대학에 교편을 잡고 살아온 잘난 친구가 나를 화나게 한다.




고등학교 2학년 같은 반 친구 중에 유난히도 3명이서 친하게 지냈다. 왜 친해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서로의 집에도 놀러 가고 독서실 공부도 같이 했다. 한 친구의 아버지는 교육부 장학사이고 또 다른 친구의 아버지는 세운상가에서 전파상을 운영하고 계셨다. 친구집에 놀러 다니며 식구들 까지도 알 정도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에 장마로 망원동에 물난리가 났을 때 친구의 집에 가서 물에 젖은 짐들을 날라주던 기억도 있고, 그 친구 동네 독서실에 공부하러 갔다가 저녁에 놀이터 미끄럼틀에 않아 함께 별을 보기도 했다. 음식 만들어 주는 걸 좋아했던  아현동 친구의 '소시지 야채 볶음'은 아직도 추억 속의 요리이다. 그 걸 먹고 밤새 한 이불속에서 각자의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모임 이름을 '천우뭉(하늘이 뭉치게 해 준 우정)'이라고 정하고  반지도  하나씩 만들어서 끼고 다녔다. 그 당시에는 그게 멋이었고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삼십 년이 지나는 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생기고 각자 바쁘다 보니 만남의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다 보니 점점 자기만의 캐릭터로 고정화되어가는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겠지만 말이다. 아현동 친구는 학교를 졸업하고 순탄하지 않은 사회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보니 '착한 놈이 왜 저렇게 인생이 안 풀리나' 하는 안쓰러운 이미지가 되었다. 반면 망원동 친구는 대학교수로서 권위와 안정으로 삶을 살아오다 보니  '저놈은 왜 점점 더 권위적으로 주위사람을 무시하는 느낌을 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결국 어제 저녁 모임자리에서 내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어떤 술자리보다도 편한 자리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잘난 친구는 다른 친구들을 무시하는 듯한 어투와 행동 때문에 험한 분위기로 모임을 급하게 끝냈었다. 그런 과거의 악몽때문에 저녁식사 후에 2차로 카페에 차를 마시며 마무리를 하려고 했지만 두 친구의 고집으로 생맥주집으로 간 것이 화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술자리 내내 마음이 불편했는데 갑자기 내 나름의 자식교육에 대한 생각을 비아냥 거리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넌 왜 우릴 항상 가르치려고 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것만 옳다고 주장하냐, 뭐가 그리 잘났냐"라고 따져 물었다. 결국 친구의 사과를 받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은 받았지만 내 마음은 쉽게 풀리지가 않는다. 내가 단순히 화가 많아진 탓일까, 아님 오래된 친구간의 애증 때문인가.

"넌 왜 우릴 항상 가르치려고 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것만 옳다고 주장하냐, 뭐가 그리 잘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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