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등산 생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채 Jan 15. 2023

눈이 올지, 비가 올지 (도봉산 망월사)

100개 글쓰기(8회차)

한 겨울인데 날씨가 많이 포근해졌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산행이 걱정되었다. 등산동호회 운영진은 새해 첫 정기산행이라서 몇 주 전부터 공지를 올리고 많은 회원들의 참석을 독려했다. 하지만 전날 내린 비로 인해서 산행이 취소가 될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다시 내려와야 할 산을 뭐 하러 올라가냐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비가 내리는데 등산을 하러 간다고 하면 당연히 미친 거 아니냐고 한다. 사실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도 이해를 못 했다. 그러던 것이 한 번 두 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가 더우나, 날씨가 추우나 등산을 다니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 '저 인간, 원래 저런 거구나' 하고 내버려 둔다. 물론 비나 눈이 내리면 안전한 산행을 위해서 등산코스의 변경이 필요하긴 하지만 여간해서는 산행 자체를 취소하지는 않는다.




일기예보는 산행 당일에도 비나 눈이 올 것이라고 했는데 정확하게 눈이 내릴지, 비가 내릴지 가름이 안 됐다. 그러다 보니 배낭짐이 평소보다 많아졌다. 비를 대비하기 위해 비옷과 우산을 챙기고 눈을 대비하기 위해 아이젠과 발토시, 그리고 비닐 쉘터까지 쑤셔 넣으니 배낭이 빵빵해져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묵직한 배낭을 둘러메고 집결지인 망월사역 앞에서 회원들을 만났다. 가볍게 인사와 스트레칭을 하고 등반대장을 선두로 산행이 시작되었다.


날씨는 비도, 눈도 내리지 않았지만 산에는 뿌연 산안개가 가득했고 산은 우리를 몽환적인 분위기속으로 끌어들였다. 들머리를 지나 헉헉 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첫 번째 쉼터에 도착했을 무렵부터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에 급하게 우산과 비옷을  꺼내 입고 '우중산행' 모드로 전환했다. 우의를 두드리는 빗소리는 토닥토닥 청량하게 귓가를 맴돌았다.  


산행 중에 마주치는 조그마한 돌탑은 누군가의 소망이 녹아있다. 여기저기 낮게 쌓여있는 돌탑 무더기 사이로 나도 몇 개의 돌을 쌓아 소망을 빌어본다. 한쪽에는 넓고 평평한 바위면에 돌들이 붙어있다. 넓적한 돌을 살며시 바위면에 붙이면서 다시 한번 새해 소망을 빈다. 왠지 올해는 좋은 일들만 생길 거 같은 기분이다.


망월사를 지나 평평한 쉼터 한쪽에 비닐쉘터 2동을 펼치고 삼삼오오 그 안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고 가져간 요깃거리를 꺼냈다.  바싹한 김을 싼 가래떡을 꿀에 찍어 먹고 찐 고구마, 김밥, 컵라면도 나눠 먹었다. 산 위에서 먹는 점심은  땀 흘려 운동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먹다 보니 항상 입맛이 꿀맛이다. 더군다나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의 위해'를 듣기라도 하면 감성폭발 런치타임이 된다.  




열여섯 명 모두 안전하게 원점회귀로 날머리를 통과했다. 물론 하산 중에 잠시 길을 헤매기도 했다. 겨울산은 특히 낙엽과 눈으로 뒤덮여 있어 등산로를 벗어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하산길을 쭉쭉 내려가다 보면 '아차! ' 하고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닫는 순간에도 꾸억꾸억 비탐길(탐방길이 아닌 길)을 강행한다. 왜냐하면 다시 역으로 올라가기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행초보자들에게 비탐길은 위험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기 때문에 잘못된 길이라고 생각되면 바로 정상적인 탐방길을 찾아야 한다.


하산 후에 회원 중에 한 명이 추천한 삼겹살맛집에서 뒤풀이가 진행되었다. 아~ 삼겹살, 오늘도 나의 채식생활을 마구 흔들지만 잘 구운 기름기 잘잘 흐르는 삼겹살 대신 구운 김치와 마늘, 그리고 된장찌개로  배를 채웠다. 새로 가입한 회원들이 모두 가족처럼 지내자는 의미에서 건배사를 외쳤고 신년산행 뒷풀이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졌다. "가~ , 족같이(조까치)~"

매거진의 이전글 래프팅 말고(철원 한탄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