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오일 아침은 아홉 시가 넘어서야 집안 여기저기서 기척이 들린다. 평일에는 새벽부터 부스럭 대면서 아들도, 딸도 출근준비에 정신이 없지만 주말에는 열 시가 돼서야 온 가족이 거실에서 눈인사를 하고 브런치로 뭘 먹을지 상의한다. 삼십 대가 좋아하는 음식들과 오십 대가 좋아하는 음식은 분명히 패가 갈릴만도 하지만 아내는 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 쪽으로 기울어진다.
나는 워낙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이라서 마음속으로는 '콩나물 국밥, 김치찜'을 외치면서도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파스타, 피자'를 마다하지는 않는다. 며칠 전부터 아들이 엄마랑 회사 근처 식당에 대해서 속닥속닥 얘기를 하더니 결국 이번 토요일 브런치는 아들이 근무하는 회사 근처에 있는 '경일옥'이라는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회사 근처에 있는 '경일옥'이라는 식당으로 정했다.
서울에서 식당이름에 '옥'자가 들어간 식당은 대부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노포식당이 많다. 이름에도 '옥' 자가 들어가면 대충 연배가 가름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들이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식당이 좁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주말에는 예약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 서둘러 출발을 한 후에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한참을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식당 간판이 이상했다. '홍복 문화사'라는 인쇄소 간판이 알루미늄 미닫이 식당문 위에 덩그러니 걸려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미닫이 유리창 위에 빨간 글씨로 '경일옥 Pizzeria'이라는 글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식당 앞에는 노란색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 두 개가 놓여있는 걸로 봐서 웨이팅이 자주 발생하는 음식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식당을 들어서니 테이블이 서너 개 있고 식당 안쪽 끝에는 피자를 구울수 있는 화덕 안에 시뻘건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일행이 첫 손님이었고 아들은 빠르게 주문을 했다. '까르보나라', '아마트리치아나(토마토)' 스파게티 와 함께 ' 뽀모도리니 로마나(방울토마토)', '알트로 베르데(루꼴라)' 피자. 솔직히 나는 발음 하기도 어려운 이태리 음식들이다.
아이들이 어릴때는 식당에 가면 음식주문을 내가 했는데 이제는 주로 아이들이 한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주인장으로 보이는 직원이 주문을 받자마자 오픈형 키친에서 잘 숙성된 피자도우에 토핑을 하고 곧바로 끝이 평편하게 생긴 기다란 삽으로 피자도우를 얹어서 화덕 깊숙이 쑤욱 집어넣는다.
부엌의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직원이 삶은 스파게티면을 접시에 담고 소스와 치즈가루를 뿌린다. 식당 안에 퍼지는 피자가 구워지는 냄새와 까브로 나라의 고소한 향기가 침색을 자극한다. 계란노른자를 톡 터뜨려 크림소스와 면발 사이를 골고루 스며들게 하고 포크로 돌돌 말아 입안에 집어넣는다. 이태리 나폴리의 바닷바람이 머릿속을 스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조금 걷다보니 을지로 골목 건물사이로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만한 비좁은 사잇길 중간즈음에 머리 위로 독특한 글씨체로 '커피한약방'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1층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건너편 건물의 좁다란 계단을 오르면 이층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있다. 한약방에서나 볼 수 있을 거 같은 한약재를 보관하는 커다란 나무 서랍으로 짜인 오래돼 보이는 장식장과 자개장으로 인테리어 되어 있다.
오래전에는 진짜 한약을 팔던 곳임을 느낄 수 있다. 커피를 마시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의 머리 위 벽면에 멋지게 쓰여진 사자성어(계단조심)가 붙어있고 그 밑에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 박제'가 한 마리 놓여있다. 지나간 과거가 박제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레트로(Retrospect, 추억)의 향수가 느껴진다. 이곳이 바로 뉴트로(New+Retro), 힙트로(Hip+Retro)의 성지인 '힙지로' (Hip+Eulgiro)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