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의 <라면을 끓이며>라는 책을 모티브로 북 뮤지션인 '제갈인천'님이 부른 노래에 나오는 가사이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도 유년 시절에 끓여 먹던 라면 맛을 잊을 수가 없다. 특히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점심시간에 냄비라면을 먹기 위해 종이 울리자마자 총알처럼 달려가 뜨거운 라면을 후후 불어가며 미친 듯이 흡입하던 추억은 아직도 머리에 송곳처럼 박혀있다.
유년시절뿐이 아니라 지금도 라면은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코펠에 라면 두 덩어리와 수프를 털어 넣고 부속물(송송 썰어온 대파, 깐 새우, 물만두, 떡국떡)도 풍덩 떨어뜨린다. 4개의 양은그릇과 2개의 종이컵에 면을 먼저 건져내고 국물을 붓는다. 잘 익은 신김치가 라면의 맛을 더해준다. '후르르 쩝쩝', 게눈 감추듯이 빈 그릇이 리필을 요구한다.
일주일 전에 등산 밴드에 공지된 산은 서울 노원구와 경기도 남양주 사이에 놓인 '불암산(508m)'이다. 금강산에 있던 불암산이 한양의 중심에 산을 모집한다는 소리를 듣고 열심히 달려와 보니 이미 '남산'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어 다시 북쪽으로 뒤돌아 가려다가 지금의 자리에 멈춰졌다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그래서 그런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불암산의 정상은 중앙에서 북쪽으로 치우쳐 있다.
등산 경로는 가장 남쪽 꼬리 부분인 남쪽 '백세문'에서 출발해서 완만한 능선을 따라 정상을 찍고 하산하는 약 9km 거리의 코스이다. 난이도는 초보이지만 거리는 그렇게 짫은 거리는 아니라서 조금은 긴장된 상태에서 집합장소인 공릉역 근처 카페를 출발했다. 들머리까지 도보로 20분을 예상했지만 30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산속보다 도심 길 찾기가 더 어려워 3km를 둘러 '알바'를 하고 나서야 들머리인 '백세문'을 통과한것이다.
삼월의 첫 산행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봄이 일어나고 있다. 매서운 겨울바람은 온 데 간데없고 시원한 산바람이 빰을 스치고 나무의 꽃망울은 터지기 일보직전까지 부풀어 있다.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니 찬겨울바람을 예상하고 입고 온 등산 외투가 온몸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다. 옷 정리도 하고 쉬어갈 겸 전망대에 옹기종기 의자를 펴고 각자의 배낭에서 가져온 행동식들을 꺼내놓는다.
산에서는 모두 마음이 착해진다. 자신들이 가져온 음식을 서로 먼저 꺼내서 다른 회원들에게 권한다. 물론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냥 산이 우리에게 주는 선한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미니 테이블에는 빵, 바나나, 방울토마토, 커피가 올라온다. 바쁠 거 없는 토요일 등산은 여유롭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팔부능선 어디쯤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두시가 넘어서야 정상에 도착했다. 단체사진을 찍고 하산은 상계역 방향으로 잡았다.
정상 바로 아래 쥐바위 지나 다람쥐 광장 벤치에 앉아 십여 년 전의 '한여름밤의 악몽'을 떠올린다. 전 직장 등산동호회에서 등산 꽤나 했던 친구들을 따라 불암산 야경과 비박을 경험하러 산을 올랐다. 당시에는 백패킹이라는 개념도 등산장비도 미흡했던 때라서 친구말만 믿고 야간에 랜턴을 켜고 산에 올라 라면도 끓여 먹고 상계동 아파트 불빛과 상가의 네온사인 야경을 안주삼아 음주도 거나하게 했다.
잠을 자려고 다람쥐 광장 한쪽 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고 새벽이슬을 피할 요량으로 스틱을 겨우 세워 친구가 가져온 비닐을 쳤다. 그때까지도 일행은 전혀 몰랐다. 한여름밤의 독기 오른 '산모기'의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얼굴이고 뭐고 온몸에 모기 물린 자국이 부풀어 올라서 서로 낯선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후로는 한동안 그 친구와 연락을 끊었다.
과거의 악몽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불암산이 좋다. 바위가 많아서 좋고, 쉽게 오를 수 있어 좋고, 지하철역이 가까워서 접근성이 좋다. 특히 불암산 야경은 서울의 3대 야경 명소여서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