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토리는 주인공이 이끌어간다. 하지만 조연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다. 큰 줄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주인공이지만 조연이 있기 때문에 웃음도 슬픔도 배가 된다. 영화보는 또 다른 재미는 큰 존재감 없던 조연배우가 몇 년 뒤에는 영화계의 블루칩이 된 후에 과거에 출연했던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이다.
4년 전에 상영된 <뺑반, 한주희 감독, 2019년> 은 공효진, 류준열, 조정석이 주연을 맡은 자동차 액션 영화로 빠른 스피드와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기억에 남는 영화다. 이 영화에 '손석구'가 출연했었다. 최근에 가장 핫한 영화배우가 솔직히 그 영화에 출연했었는지 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 음식에서도 주연은 아니지만 조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고명'이다.
물론 혹자에 따라서는 음식에서의 '고명'을 조연으로 보기보다는 단역(엑스트라)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존재감이 크다.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에 '장승요'라는 사람이 '안락사'라는 절에 그려놓은 용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고 완성한 벽화를 떠오르게 한다. 요리의 마지막 단계인 고명을 올리는 순간은 용의 눈에 눈동자를 그려놓은 것과 같다.
물론 바쁘게 살아가고 편의점이나 밀키트가 익숙한 현대인에게 '고명'이라는 단어는 낯설다.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국민학교, 혁대, 비디오테이프'처럼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날말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고명'을 얹어놓은 음식은 음식 자체도 '있어 보이면서 동시에 맛나 보일뿐만 아니라' 먹는 사람도 '있어 보이고 멋져 보인다.'
'고명'은 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음식의 맛을 더하기 위하여 음식 위에 얹거나 뿌리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주로 '버섯, 실고추, 지단, 대추, 밤, 호두, 은행, 잣가루, 깨소금, 미나리, 당근, 파 등을 사용한다. 요리 선생님은 고명으로 사용되는 실고추, 미나리, 잣(통, 가루, 초생), 계란 지단(골패, 마른모, 알), 소고기(완자, 알쌈), 버섯(표고, 석이, 목이)을 설명하고 조리 시범을 보여주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알쌈'이었다. 소고기(홍두께살)를 얇게 썰어서 채를 쳐서 다시 촘촘하게 다지고 불고기 양념인 '간설파마 후깨참(간장, 설탕, 파, 마늘, 후추, 깨, 참기름)'으로 버무린다. 콧구멍에 들어갈 만한 크기로 경단을 만들어 프라이팬에서 익히고 동그란 경단 가운데 놓고 만두처럼 반을 접어 완성한다. 한 입 거리인 조그마한 알지단(고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가히 '정성 덩어리'이다.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원래 한식조리사 시험은 '궁중요리'가 기본이며 궁중요리는 임금이 드시던 음식이다. 임금은 '쌈'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입을 크게 벌리면 천하다고 여겨지던 것이다. 그래서 입을 조금만 벌리고 먹을 수 있게 '알쌈'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장금이'가 수라갓을 떠난 것도 만들기 번거로운 '알쌈' 때문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오늘의 과제는 '달걀지단과 미나리초대'이다. 달걀은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해서 젓가락을 그릇 바닥에 밀착해서 거품이 생기지 않도록 좌우로 빠르게 섞고 채에 거른다. 노른자는 70도에 익고, 흰자는 60도에 익기 때문에 무조건 약불에서 조리해야 한다. 손가락을 덮인 프라이팬에 대고 '앗, 뜨거워!' 하면서 손을 띄면 70도 이고 ' 음, 뜨거운걸' 하면 60도 란다.
식용유를 두르고 키친타월로 문지르면서 코팅을 해주고 온도가 어느 정도 오르면 살짝 노른자를 얇게 펴서 올린다. 겉표면이 순식간에 익어버리면서 쭈글쭈글 해진다. '망했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두 번째 시도에서야 그나마 모양이 편평하게 유지된다. 뒤집으려고 젓가락으로 살살 테두리를 떼어내고 손가락으로 집으려니 어제 먹은 막걸리 때문인지 손이 덜덜 떨린다. 한식 조리사 자격증 취득의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