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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Apr 08. 2023

잡채, 주인공은 나야 나

잡채

'잡채'는 우리나라 대표 잔치음식이다. 동네잔치나 생일상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물론 최근에는 동네 백반집에 가면 기본 반찬으로 나오는 곳이 있을 정도로 흔한 음식이 되었지만 태생은 귀한 요리였다. 기록에 의하면 잡채는 약 400년 전인 조선시대 광해군(재위 1608~1623) 시절, 궁중연회에서 처음 소개되었고  임금이 제일 좋아하는 요리가 바로 '잡채'였다.


한글 최초 조리서 인 <음식디미방,1670년,안동 장씨> 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고 '갖은 재료를 일일이 채 썰어 볶아서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즙액을 뿌린 다음 천초, 후추, 생각가루를 뿌려 맛을 낸다'고 잡채 만드는 법을 적고 있다. 잡채의 '잡()'은 섞다, 모으다, 많다, 채()는 채소의 의미로 여러 종류의 채소를 섞은 음식을 뜻한다. 잡채에 당면이 들어가기 시작한 시기는 100년 전 부터이다. 원래 잡채의 주인공은 당면이 아니라 채소이다.

잡채의 주인공은 당면이 아니라 채소이다.



한식 조리기능사 자격시험에서 '잡채' 조리시간은 35분이다. 규격에 맞춰서 썰어야 할 재료들이 꽤 많다. 소고기, 양파, 오이, 당근, 도라지, 표고버섯은 6cm(두께는 0.3cm)로 썰고 황색, 백색지단은 4cm(두께는 0.2cm)로 썰어야 한다. 아직은 썰기가 익숙하지도 않고 요령도 없어서 시간이 지체된다. 특히 소고기 썰기는 고기가 흐물 거러서 매번 규격보다 두꺼워져서 지적대상 1호가 됐다.


'1일 1 야채 채썰기' 목표로 퇴근 후에 연습을 하고 있는데 고기 썰기도 추가해야 할 듯하다. 요리 사부의 채썰기 시범을 보고 있으면 칼날이 야채를 지나 도마 위를 두들기는 소리에 경쾌한 리듬감까지 실린다. 특히 마늘을 편 썰고 채를 썰때는 거의 신기에 가깝다. 요린이의 입장에서는 고수의 칼놀림이 부러울 따름이다. 속으로 '만 시간의 법칙'을 되새기며  그날을 기대해 본다.




"10분 남았습니다."  사부님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울려 퍼진다.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뭐 한다고 벌써 25분이나 지나 버렸는지 모르겠다. '아직 썰어둔 야채와 버섯도 못 볶고, 지단도 못 만들었는데, 낭패다!',  원래 볶는 순서는 팬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고려해서 양파, 오이, 당근, 목이버섯, 표고버섯, 소고기, 당면의 순서로 따로 볶아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야채를 한꺼번에 팬에 올러 '훌러덩, 훌러덩' 익힌다.


다시 양념한 버섯들과 소고기도 한번에 익히고 미리 양념해둔 당면과 숙주를 넣고 섞는다. "에고, 뜨거워라"  볶은 재료들을 식힐 시간이 없어 뜨거움을 감수하고 전체양념인 간장, 설탕,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양손으로 양념이 잘 배도록 골고루 비벼준다. 후다닥 계란을 깨고 달구어진 팬 위에 지단을 붙여내고 고명을 썰어 완성그릇에 담은 잡채 위에 올려 가까스로 제한시간에 제출했다.


소복하게 담아낸 잡채에는 당면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도라지와 숙주다. 역시 잡채의 원래 주인공은 당면이 아니라 채소다. 각자 제출된 잡채들을 하나하나 품평을 시작한다. 채의 두께, 당면의 색깔이 평가의 포인트다. 약간 뻣뻣해 보이고 색이 투명하지 않은 익지 않은 당면은 치명적인 감점이다. 매의 눈으로 평가를 이어가던 사부님은 볶지 않은 당면도 골라낸다. "이거 누구 꺼죠?"  "제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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