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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Apr 20. 2023

오잉, 오이의 변신

오이선

더운 여름철 산행에 필수 먹거리는 단연코 '오이'이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내리쬐면서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서 잠시 쉬어가는 길에 배낭에서 땡땡 얼린 생수옆에 챙겨 온 '오이'를 한입 베어 물면 갈증이 한꺼번에 확 풀닌다. 비타민 씨를 와그작와그작 씹으면서 건강이 통째로 몸에 흡수되는 느낌이다. 집에서는 주로 반찬으로 새콤달콤하게 오이무침해서 먹는다.

'오이선(黄瓜膳)'이라고 하는 궁중요리이다.

지난주 '규이상(오이만두, 해삼만두)'에 오이를 채 썰어 넣어는 걸 보고 오이가 이렇게도 사용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은 더 새로운 변신이다. '오이선(膳)'이라고 하는 궁중요리이다. 메인요리라기보다는 약간은 식전요리 느낌으로 먹는다. 2018년 북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오찬에 등장해 화재가 되기도 했다.




영양소가 골고루 있는 좋은 재료로 만들고, 모양도 보기 좋다고 해서 임금께서 친히 호칭을 부여한 음식에는 착한 반찬이라는 뜻에서 '~선(膳)'을 붙인다. 오이로 만든 착한 음식이라는 뜻으로 '오이선'이다. 같은 맥락에서 두부선, 호박선, 가지선 등이 있다. 만드는 방법과 재료는 의외로 간단하다. 오이, 계란, 표고버섯, 소고기만 있으면 된다.


오이를 비슷듬이 세 군데 칼집을 내서 그 사이에 황지단, 백지단을 만들어 넣고 표고버섯과 소고기를 소고기 양념을 해서 채 썰어 칼집사이에 끼여 넣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단촛물을 만들어서 끼얹어 완성시켜 손님상에 인당 2개 정도 분량으로 올려내면 된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이다. 한입 깨물어 물면, 아삭아삭한 오이 식감과 함께 새콤달콤한 소스가 식욕을 자극한다.




요리사부님의 시연을 보고 실습시간에 따라 해 보니 생각처럼 금방 뚝딱하고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우선 만들어낸 사이즈가 규정크기보다 컸고 칼집의 깊이가 깊지 않아서 오이를 절였음에도 재료가 들어가지를 않는다. 겨우 구색만 맞추느라고 몇 가닥 끼워 넣어 영 보기가 안 좋다.


요리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내내 머릿속에 '오이선'이 떠나질 않아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를 뒤져서 오이를 찾아내서 다시 도전한다. 한입크기로 자르고 칼집을 깊이 내고 소금물에 담가서 뻣뻣한 오이를 부드럽게 해 준다. 마치 군대 다녀오면 철드는 아이처럼 오이도 말랑말랑하게 변한다.


칼집사이로 미리 붙여낸 황지단, 백지단, 표고버섯을 끼워 넣으려는데 '이런, 젠장' 칼집을 두 군데만 넣었다. 빨리 칼집 사이에 한 군데를 추가하니 군대 안 다녀온 아이처럼 뻣뻣하다. 그래도 억지로 끼워놓고 보니 요리수업시간에 만든 것보다는 비주얼과 크기가 나쁘지 않다. 식초, 설탕, 물을 동량으로 섞은 단촛물을 끼얹어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에게 진상한다.


(좌) 1차도전  (중앙) 레시피  (우) 2차 도전  (※대문사진은 사부님 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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