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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May 03. 2023

구이구이, 불맛 구이

너비아니구이, 제육구이, 생선양념구이, 북어구이, 더덕구이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는 골목길 식당 앞에서 연탄불에 석쇠를 놓고 생선을 굽는다. 빨간색 반코팅 목장갑과 팔에는 팔토시를 끼고  가정집 공부방에서나 사용할 만한 등 높은 바퀴의자에 앉아서 고등어를 집게로 뒤집는다. 몇 년쯤이나 그 자리에서 앉아서 생선을 구웠는지, 평생 몇 마리의 고등어들 구웠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고등어에 불맛이 들어 식당에 앉자마자 밥 한 공기가 뚝딱 비워진다는 것이다


집에서 전자레인지나 프라이팬에 구워 먹는 고등어와는 맛이 다르다. 그게 바로 불맛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물론 할머니의 내공도 한 몫한다. 십 년 전에 비해 생선을 약간 태우기는 하지만 그래도 불맛은 여전하다. 생선구이는 백반과 함께 제공 되는데, 함께 제공되는 반찬들이 하나같이 정성이 가득하다. 모든 찬들이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한식조리기능사 실기 시험은 총 31가지 요리 중에 2가지 요리가 랜덤하게 출제된다. 전체 요리 중에 5가지가 석쇠를 이용한 '구이 요리'이다 보니 구이요리가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소고기도 굽고, 돼지고기도 굽고, 생선, 북어, 더덕도 굽는다. 구이요리는 대부분 고추장 양념장(고추장+간설파마 후깨참)을 사용하지만 유독 소고기 구이인 '너비아니구이' 만이 간장 베이스인 불고기 양념장(간설파마 후깨참)을 사용한다.


왜지? 비싼 소고기라서 좀 튀어 보려고 그런 건가? 아니면 궁중요리의 품격을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이름도 직관적으로 재료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너비아니'라고 붙인 것을 보니 다른 구이요리에 비해 독특하긴 하다. 너비아니는 '너붓너붓(넓적 넓적)'하게 썰어서 만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조선요리제법(法),1900년>에는 '우육구이', <시의전서(書),1800년대>에는 '너비아니'로 기록되어 있다.




고추장 양념을 이용한 구이는 대부분 초벌구이 과정이 있다. 초벌구이는 고추장을 바르고 굽기 전에 '유장처리'를 해서 굽는 것을 말한다. 유장처리란 참기름과 간장의 비율을 3:1로 섞어서 만들고 재료(더덕, 북어, 조기)에 골고루 바른 후에 잠시 재워두었다가 구워줌으로써 재료가 타지 않고 잘 구워지게 한다.  지방이 많이 있는 육고기(소고기, 돼지고기)에는 별도의 유장처리가 필요 없이 바로 양념장을 발라 불에 구워낸다.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제육구이는 돼지고기의 특유의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향신채로 사용하는 파, 마늘, 후춧가루 이외에도 생강즙을 추가한다. 모든 구이는 은은하게 중불이나 약불에서 시간을 충분히 갖고  구워내야 속까지 충분히 익으면서 불맛이 충분히 베어 난다. 그건 삼각지 대원식당 앞에 평생 고등어를 구우시는 할머니의 노하우 이기도 한다.


하지만 시험장에서는 제한시간이 있어서 미리 석쇠에 식용유를 사면에 모두 발라두어 달라붙지 않게 하고 빠른 시간 내에 덜 태우고 재료를 익혀내야 한다. 아쉽지만 재시험을 피하기 위해서 온 신경을 집중하고 불에 구워내야 한다. 불맛이 조금 부족할지 모르겠지만 그 불맛은 나중에 시험에 합격하고 맛보기로 하고 우선 재료 태우지 말고 잘 익혀서 제출해 보자.


[사진1] 너비아니구이(좌), 제육구이(우)
[사진2] 생선양념구이(좌), 북어구이(중앙), 더덕구이(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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