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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May 16. 2023

지단, 그놈 참

계란 지단

'계란 지단'이 정말 안된다. '지단'은 계란을 노란자와 흰자로 분리해서 얇게 익혀내는 것을 말한다. 한식 조리기능사 시험 과제로 제출되는 대부분의 요리에 지단이 사용된다. 필기시험 볼 때 외웠던 난백(계란 흰자) 응고온도는 60도이고 난황(계란 노른자)은 70도이다. 흰자가 더 빨리 낮은 온도에서 익는다는 이론이다.


이론은 이론이고 실기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오감으로 하다 보니 생각처럼 되지가 않는다. 벌써 삼 개월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지단 만들기가 어렵다. 특히 오늘 모의 실전에서 조리한 '화양적'에 사용되는 두툼한 황색지단은 배운 대로 삼단 접기를 했으나 겹겹이 층이 생겨서 마치 웨하스처럼 돼버렸다.


품평회 시간에는 잘못된 사례로 지적을 당하고 나니 은근히 오기까지 생겼다. 게다가 오후 화양적 준비과정에서 조리대 위에 접시를 정리하다가 누워있던 칼날에 왼손 약지가 스치면서 오싹한 느낌이 온몸을 스치기 까지 했다. 대일밴드와 고무골무로 흐르는 피를 지압하고 진행하다 보니 만든 지단이 더 마음에 안 들었다.




오십이 다되도록 부엌 근처에 가 보지를 않았던 것은 안동 김 씨 집안에 시집온 경주 김 씨 할머니의 엄한 가르침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찌하다 보니 외벌이로 삼십 년을 사회생활에 집중하다 보니 주방보다는 거실이나 안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인생 이막에서는 '할 수 있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이 '요리'인데 역시나 쉬운 일은 없다.


평생을 주부로 살아온 다른 수강생들의 빠른 손놀림과 정갈한 마무리를 따라가기가 벅차다. 물론 상대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 부족한 부분을 만회하기 위해 요즘은 새벽독서도 포기하고 레시피에 매달리고 주말마다 한 번이라도 더 실습을 하느라고 주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어 놓은 요리 완성도가 떨어져서 안타깝다.




계란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서 지단을 만들기도 하고 섞어서 전(육원전, 고추전, 표고버섯 전)을 부칠 때 사용되기도 한다. 분리돼서 사용되는 경우에도 고명(탕평채, 잡채)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부재료(겨자채, 비빔밥, 화양적)로 사용되기도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요리실습이 어느덧 부담감이 되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러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조리사 자격증을 신청하고 시험날을 기다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도 되고 조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마음을 다시 다잡는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만든다. 내가 만든 음식은 누군가에게 행복이 된다."라고 다짐을 하면서 귀갓길에 계란 10개을 마트에서 산다. 역시나 연습보다 좋은 것은 없다. 나는 만시간의 법칙을 믿는다.

[사진] 화양적에 사용된  삼단분리 황색지단(5/15)

*대문사진: 인터넷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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