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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Jul 12. 2023

해삼이 꿈틀거린다

해삼초회(나마꼬노 스노모노)

해삼이 살아있다. 어디서 왔는지 언제 잡혀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요리학원 도마 위에서 아직까지 꿈틀거리고 있다. "어머, 징그러워요. 손으로 만질 수가 없네요."  삼십 대 중반의 여성 수강생은 해삼을 가르고 내장을 들어내는데 고군분투하고 있다.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육해공군 각종 고기를 활용해서  음식을 만들고 있지만 살아있는 생물을 만져보기는 처음이다.

"어머, 징그러워요.
손으로 만질 수가 없네요."


아주 오래전, 중학교 생물시간에 접한 개구리 이후로 거의 생물을 잡아본 적이 없었다. 해삼도 바닷가에서 해녀들이 잡아 즉석에서 썰어주면 날름 받아먹기만 했지 한 번도 직접 손질해보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해삼 손질에 부담이 없다. 그동안 동태, 오징어, 닭을 손질하면서 어느 정도 분해해서 살을 바르는 게 익숙해졌다. 해삼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을 잘라내고 배를 갈라 내장과 힘줄을 제거하고 사시미칼을 살짝 눕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낸다.




해삼초회에는 해삼 외에도 몇 가지 부재료가 들어간다. 끓는 물에 불린 미역을 말아서 썰고, 자바라 썰기 해서 소금에 절인 오이는 해삼과 함께 폰즈(ponzu)를 만들어 뿌려먹는다. 폰즈는 원래 감귤류의 과즙으로 만든 일본의 대표적인 조미료인데 요즘에는 다시물(1큰술), 간장(1큰술), 식초(1큰술)를 섞어 초간장으로 만들고 해삼초 위에 뿌려먹는다. 또한 폰즈에 야꾸미를 풀어 먹기도 한다.


야꾸미(음식에 곁들이는 향신료, 양념, 고명)는 강판에 갈아놓은 무즙에 고춧가루를 섞어 만든 것으로 레몬과 실파 푸른 부분을 송송 썰어서 함께 먹는다. 일식조리기능사 실기시험 요구사항에는 '오이는 줄무늬(자바라) 썰기를 하라'라고 명시돼 있다. 칼의 앞부분을 눕히고 오이를 촘촘하게 사선으로 2/3 깊이만큼 한쪽에 칼집을 넣고 오이를 90도로 세우고 반대쪽으로 눕혀서 같은 요령으로 칼집을 넣는다. 역시나, 예상했던 것만큼 잘 되지는 않는다.




요리 실습장에서 만든 해삼초회는 접시를 분리해서 해삼, 미역, 오이를 한 접시에 담고 초간장(폰즈)을 뿌려내고, 또 한 접시에는 실파, 레몬, 빨간 무즙을 담아낸다. 한 접시에 담아내도 되지만 분리를 하니 더 먹음직스럽다. 품평회를 마치고 집에 가져가려니 가져간 용기에 담아내기가 쉽지 않다.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음식용 비닐봉지에 모두 섞어 담았다.  귀가해서 그릇에 담아내니 비주얼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요리실습시간에 사용하지 않은  해삼 한 마리도 얻어온 터라 다시 해삼을 분해하고  한식 스타일로 초고추장에 찍어먹기 위해 생짜배기로  잘라 그릇에 담아 일본식 해삼초 옆에 놓는다. 갑자기 며칠 전에 선물 받은 중국술인 '공부가주'가 떠올라 조심스럽게 꺼내서 앙증맞은 조그만 사기 잔에 졸졸졸 따라본다. 술의 향기가 강하게 오감을 자극한다. 식탁 위에는 어느새 한, 중, 일이 하나가 되고 창밖에는 아직까지 비가 그치질 않는다. 술 한잔 하기 딱 좋은 날이다.

한, 중, 일이 하나가 되고
창밖에는 아직까지 비가 그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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