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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Sep 01. 2023

어묵국 1,500인분

어묵국

그렇게 큰 마른 멸치를 본 적이 없다. 커다란 봉지에 씨알이 굵은 멸치가 꽉 들어차 있다. 멸치 두 봉지를 탁탁 털어 원통형 철재 통에 넣고 끓는 물에 풍덩 집어넣는다. 다시마도 커다란 비닐봉지를 두 개나 오픈시켜 통째로 모두 물속으로 잠수를 시킨다. 무, 양파 등 육수를 위한 야채가 그 뒤를 따른다. 커다란 회전형 스테인리스 솥단지에 진한 육수가 우러나온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선배 조리사가 건더기를 건져내라고 한다. 대형 뜰채를 이용해서 솥단지 안에 있는 멸치와 다시마를 건지려고 깊숙이 넣고 팔뚝에 힘을 주려다가 몸까지 휘청한다. 손목 끝에 전해지는 육중한 물먹은 다시마의 무게감이 팔뚝 근육이 버티지를 못할 정도다. 욕심이 과했다. 얼른 작전을 바꿔서 적당량을 여러 번 건저 내는 걸로 건더기를 남김없이 건져냈다.

물먹은 다시마의 무게감이
팔뚝 근육이 버티지를 못할 정도다.




백수생활 딱 1년 만에 첫 출근이다. 나도 모르게 새벽에 자다 깨다를 반복 했다. 설레기도 하도 두렵기도 한 마음으로 동네 초등학교 급식실의 문을 들어섰다. 그래도 며칠 전에 입사신고를 하기 위해 학교 방문을 했던 터라 급실실을 곧바로 찾아들어가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했다. 


반갑게 맞아 주는 선배들의 미소에 긴장된 어깨 근육이  조금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조리할 때 입는 유니품과 모자 그리고 고무장화를 지급받아 탈의실에서 환복을 했다. 어색하지만 그래도 조리실무사로서 마치 전장에 나가기 전에 전투복을 지급받은 군인처럼 탈의실에 걸러있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결의를 다져본다. 


조리를 시작하기 전, 화기 애애한 분위기에서 새로 입사한 신입조리원들과 선배조리원들이 인사를 나누고 커피도 한잔 마시면서 환영을 해주었다. 서먹서먹하고 긴장된 분위기가 조금은 부드러워져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티타임과 더불어 선임 조리사는 신입사원 포함해서 새롭게 짠 조편성으로 업무분장을  나누었다. 나에게 부여된 첫 번째 미션은 오전에는 '국' 담당 보조, 오후에는 '반찬통' 세척이었다. 

첫 번째 미션은 오전에는 '국' 담당 보조,
오후에는 '반찬통' 세척이었다. 




어묵국은 캠핑장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최애 메뉴이다. 간단하게 마트에서 2~3인용 밀키트 형식의 비닐팩을 사고  무와 청량고추도 썰어서 챙겨가면 끝이다. 조리가 간단하고 다 먹고 난 후에는 달걀을 풀고 햇반 한 개와 김가루를 뿌리면 한 끼 식사로서 든든하기 때문에 자주 애용한다. 


하지만 오늘은 격이 완전히 다르다. 5명도 아니고 50명도 아니고 급식인원이 1,500명이다. 아직 완전 초짜에 첫 출근에 부여받은 첫 임무이긴 하지만 내가 만든 어묵탕을 많은 사람이 먹는다고 생각하니 부담도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한 느낌도 든다. 


조리업무로서는 첫 출근이다 보니 급식실의 모든 도구와 장비도 낯설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낯설고 심지어 입고 있는 조리복과 고무장화도 어색하지만 웬일인지 앞으로 좋은 일들만 생길 거 같은 기분이다. 내가 조리한 어묵탕을 먹고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싱그러워 보인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싱그러워 보인다.


[사진] 현미밥, 어묵국, 돈육메추리알 장조림, 도라지 오이무침, 참치 김치볶음, 블루베리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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