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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Sep 09. 2023

손이 저려온다

배추김치

배추김치를 자르던 중에 손이 저려온다. 점심 급식에 사용되는 배추김치는 반으로 잘린 상태로 대략 열 포기씩 다섯 묶음 정도가 새벽마다 학교 급식실로 배송된다. 배달된 배추김치는 대가리 부분을 칼로 자르고 세로로 육 등분을 하고 직각으로 돌려 가로로 아이들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잘게 자른다.

배추김치를 자르던 중에 손이 저려온다.

가로로 자를 때는 배추크기에 따라서는 한꺼번에 썰기 힘들다 보니 왼손으로는 배추를 단단히 움켜쥐고 칼을 쥔 오른손으로는 빠르게 잘라야 한다.  쌓여있는 배추김치가 반정도 줄어들 때까지는 칼을 쥐고 있던 손이 칼손잡이와 하나가 되었지만 후반전으로 넘어갈수록 칼을 쥔 손이 헐렁해진다.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요리학원에서 배운 대로 칼날과 손잡이 사이를 흔들리지 않게 꼭 쥐고 의욕에 차서 배추김치를 자르지만 결국 왼손까지 동원해서 칼등을 누르면서 겨우겨우 힙겹게 자른다. 그러다가 결국 오른손에 쥐가 나서 칼을 내려놓고 손바닥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해본다. 함께 김치를 자르고 있는 짝꿍 선배를 흘낏 쳐다보니 쉬지않고 계속 썰고 있다.  로봇이 자르는 것처럼  일정한 속도로 빠르게 자르고 있다. 마치 신들린 무녀의 칼처럼 선배의 칼은  도마위를 춤추고 있다.




"김치를 자를 때 너무 손에 힘을 주면서 톱질하듯이 자르면 힘들어서 못합니다.",

"칼 손잡이를 편하게 잡고 밀듯이 한 번에 잘라야 합니다."

선배의 한마디가 내 머릿속에 송곳처럼 박혔다. 이십 년 노하우를 순식간에 선물 받은 느낌이다.

이십 년 노하우를 순식간에
선물 받은 느낌이다.


처음에 손에 힘이 빠지고 저려오는 것이 고무장갑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칼은 맨손으로만 잡다가 급식실에서는 면장갑에 고무장갑까지 끼고 식재료를 자른다. 더군다나 여성선배들이 사용하던 고무장갑을 공용으로 사용하다 보니 가만있어도 고무장갑이 팔뚝과 손이 조여 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배의 말을 듣고 보니  손에 쥐가 난 가장 큰 원인은 칼을 사용하는 자세와 방법 때문이었다. 아직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선배의 말대로 칼 손잡이를 부드럽게 잡고 밀어썰기를 하니 전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배추김치가 잘려진다. 물론 고무장갑도 더 큰 사이즈로 바꾸고 나니 손 저림 현상이 훨씬 줄어들었다.




초등학교 급식조리실에 출근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첫날의 어색함이 하루하루 지남에 따라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조리실의 조리도구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조리반장이 첫날 나눠준 프린트물에 적힌 숙지해야 할 사항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지급받은 위생모, 유니폼, 고무장화가 이젠 낯설지 않게 되고 개인 지급품목도 모두 챙겼다. 조리절차에 따른 색깔별 특대 사이즈의 고무장갑(분홍색, 흰색, 빨간색)과 대형 비닐 앞치마(분홍색, 흰색, 하늘색)에는 큼직막하게 이름을 써두기도 했다. 특히나 고무장갑은 여성 동료들 것과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한 주 동안 맡았던 국담당(오전)과 반찬통 세척(오후)도 일주일 동안 반복해서 하다 보니 나름 요령이 생겨서 퇴근 후의 허리 통증과 어깨통증이 많이 누그러졌다. 뭐 그렇다고 근육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첫날 일하고 나서는 거의 반죽음 상태였지만 이번주는 훨씬 근육통이 줄어들었다. 다음 주부터는 담당이 채썰기(오전) 집기류 세척(오후)으로 바뀐다고 하니 또다시 긴장이 되긴 하지만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속으로 되새기며 '긍정 대마왕' 이 되어본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속으로 되새기며
'긍정 대마왕' 이 되어본다.
[사진] 차조밥, 감자양파국, 안동닭찜, 도토리묵무침, 거봉, 배추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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