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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Sep 11. 2023

초짜라서 미안합니다.

햄전


'앗, 뜨꺼워!!!'  

물이 담가진 식기통속에 있는 식기를 꺼내기 위해 손을 넣는 순간, 손가락에 전해오는 찌릿한 충격에 정신이 아찔하다. 오후 세척작업을 받아둔 뜨거운 물이 예상보다 더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순간적으로 즉시 찬물에 손을 식혀야 한다는 생각에 바로 식기통 옆에 틀어져 있는 수도꼭지에 손을 갖다 댔다. 


'앗, 뜨꺼워!!!'  


젠장, 수도꼭지에서 '콸콸콸' 흘러나오는 물은 아까 그 물만큼이나 뜨거웠다. 역시나 세척을 위해 물을 받고 있던 참이었나 보다. 태권도 시합에서 이단옆차기처럼 두 번 연속 뜨거운 물에 데고 나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때까지도 손에는 면장갑이 깨워져 있어서 혹시라도 손이 더 상할까 봐서 얼른 장갑을 벗어젖혔다. 


다행히 벽 쪽에 놓인 빨간 다라이에 찬물이 담겨 있어 얼른 물속에 풍덩하고 손을 담갔다. 후끈후끈하던 손가락이 찬물을 만나 열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가운데 손가락과 약지의 껍질이 훌러덩 벗겨져서 물속에서 흐느적거리는 것이 보였다.



손이 따끔거리는 것은 참을 만했지만 그보다는 창피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길을 뛰어가던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아파서 울기보다는 창피해서 우는 것처럼,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삼십 년 동안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일하면서 정비사들 안전교육을 시키고 아침마다 안전구호를 외치던 나였는데, 어이없게도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부주의로 안전사고를 발생시킨 것이다. 


창피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급식실 동료들에게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조리 반장이 급하게 챙겨 온 얼음팩을 손등에 감싸고 바로 양호실로 뛰어가 '화상 쿨링 스프레이'로 응급 처지를 받고 근처 병원을 찾았다. 오전에 '햄전'을 만드느라 유니폼은 땀범벅이 되고 흰색 윗도리에는 반죽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지만 옷을 갈아입을 만한 상황이 아니다 보니 곧바로 동네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오전에 '햄전'을 만들 때만 해도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월요일 당번이다 보니 평상시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짝꿍 선배와 함께 배송된  식재료 검수, 조리를 위한 조리기구 및 세척수 세팅 그리고 쌀(90kg)까지 3번 씻어서 물에 담가두었다. 


아침조회 후에는 스트레칭 위주의 체조를 한다. 무거운 식재료나 반복적인 일로 인해서 허리가 삐끗하거나 손목, 발목이 부상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있는 힘껏 온몸을 비튼다. 체조를 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몸도 가벼워진다.  


오늘의 미션은 슬라이스 햄이 밀봉된 비닐 진공팩을 뜯어 내용물을 꺼내는 것이다. 봉지를 뜯은 후에는 살짝 얼어서 뭉쳐있는 슬아이스 햄을 살짝 비틀어   하나하나 분리한다.  분리된 슬아이스 햄은 밀가루(전분가루, 튀김가루 포함)를 골고루 묻히고 체에 거른 후에 달걀물을 입힌다. 


가열된 전판에는 기름을 두국자 정도 두르고 달걀물이 묻은 햄이 올려진다. 한 번에 대략 200개 정도가 올려지고 15회를 반복해서 구워내면 아이들 점심식사를 위한 '햄전'이 완성된다. 오전 조리를 마치고 맛난 점심식사 후에 오후를 준비하다가 그만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갔다. 최상의 컨디션은 순간 바닥으로 떨어졌다. 


응급실에서는 '최소한 1주일동안 손에 물이 닿으면 안된다.' 는 처방이 내려졌다. 병원에 다녀온 후 조퇴를 하고 집에 가자마자 조리실 단톡방에 문자를 올렸다.  "금일 발생한 안전사고로 인하여 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초짜라서 미안합니다.ㅠㅠ"


"초짜라서 미안합니다.ㅠㅠ"
[사진]  보리밥, 닭곰탕, 햄전, 코다리강정, 거봉, 배추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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