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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Nov 28. 2023

감자조림, 달짝지근이 답이다

감자조림(초등학교 급식실에서)

방송에서 보면 숙련된 요리사가 음식을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맛을 본다. 잠시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들어간 식재료를 하나씩 나열한다. "와~ 그걸 어떻게 알았지?"라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식재료뿐만 아니라 간도 기가 막히게 맞혀서 맛난 요리를 만들어낸다.


요리사의 절대미각이 요리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것이다. 요리사의 타고난 미각 때문인지 아니면 오래된 훈련으로 인한 개발된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절대미각이 부럽기는 하다. 물론 나도 조리실에서 조리하는 중에 수시로 음식 맛을 본다. 식재료를 알아맞히기 위해서는 아니고 간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맛보기의 결과는 대부분 '맛있다.'이다.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재료의 맛이 살이 있어서 맛있고, 짜면 짠 대로 간이 배어있어 맛있다. 쉽게 말하지만 입맛이 까다롭지 않다는 것이다. 요리사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긴 하다. 그러다 보니 간을 맞출 때는 남들보다 더 집중을 해야 한다.


간을 맞출 때는 남들보다 더 집중을 해야 한다.




새벽에 배송된 감자는 진공팩에 포장된 상태로 사각 세척통에 하나 가득 담겨 있다. 양이 꽤 많아 보인다. 배송리스트를 확인해 보니 88kg이나 된다. 거의 성인남성 몸무게만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껍질이 깎여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만약 껍질이 있는 상태로 배송되었다면 오전 내내 감자껍질 깐다고 시간을 다 보냈을 것이다.


비록 껍질이 벗겨진 상태이긴 하지만 워낙 양이 많아서 조리 시작시간을 조금 앞당겨 시작을 한다. 조리가 시작하자마자 조리장의 지시에 따라 조리원 모두가 감자에 달라붙었다. 누구는 비닐포장을 제거하고, 또 누구는 감자를 흐르는 물에 두 번 씻어내고, 그러는 중에 누군가는 절단 작업을 시작한다.


감자를 길이 방향으로 자르고, 자른 면을 바닥에 눕히고 다시 길이 방향으로 한번 더 자른다.  4조각의 감자를 눕히고 '숭덩숭덩' 큼지막하게 자른다. 감자를 너무 얇게 자르면 나중에 끓는 물에 한참 졸였을 때 감자가 부서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르다 보면 두께가 자꾸 얇아진다.




잘린 감자 조각들을 곧바로 커다란 솥단지 두 군데 쏟아붓고 물을 찰랑찰랑하게 채운다. 솥단지에 전원을 넣고 온도를 240도까지 맞춘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감자를 커다란 조리용 삽으로 천천히 잘 섞어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감자가 서서히 익어간다. 솥단지에  간장을 넣고 간 마늘, 옥수수기름과 함께 물엿과 설탕을 추가한다.


딱딱했던 감자조각들은 어느새 손으로 누르니 금세 부서질 정도로 잘 익는다. 감자도 익고 간장도 어느 정도 졸여진 상태에서 맛보기 그릇에 담아 국물과 함께 감자 한 조각을 입속에 집어넣는다. 우물우물 씹어보니 이번에서 역시나 '맛나다.' 거기다가 간도 어느 정도 맞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먹어본 가장 맛있었던 감자조림의 경험치를 기억해 내서 지금의 맛과 비교해 본다. 좀 더 달짝지근하고 씹었을 때 끈적거림이 있었던 걸로 기억되어 과감하게 물엿과 설탕을 더 집어넣고 추가적으로 간장도 좀 더 넣어본다. 그런 후에 다시 간을 보니 훨씬 더 맛나다. "으이그, 이 놈의 까다롭지 못한 입맛이여~ "


"으이그, 이 놈의 까다롭지 못한 입맛이여~ "
[사진] 찰보리밥, 청국장찌개, 제육볶음, 감자조림, 오이부추무침, 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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