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여 년 전 명량대첩에서 거북선을 움직이는 20여 개의 '노'를 죽을힘을 다해 젓는 선원들처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커다란 나무 주걱을 휘젓는다. 고추장, 간장, 설탕, 까나리액으로 기본소스를 만들 때만 해도 수월했던 주걱 젓기가 어묵, 떡, 메추리알, 소시지, 대파등의 내용물이 많아질수록 국물은 걸쭉해지면서 힘에부치다.
애초에 담당은 떡볶이가 아니라 밥 짓기였다. 하지만 어찌 힘쓰는 일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 조리실 봉사자들 중에 유일한 남정네로서 외면할 수가 있겠는가. 호기롭게 나무주걱을 인계받아 떡이 솥단지에 눌어붙지 않도록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뜨거운 솥단지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와 지쳐오는 근육으로 인해 몸이 후끈 달아오르면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고 등줄기에 주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1,000명분의 떡볶이는 그렇게 서서히 익어갔다.
밥 짓는 담당 봉사자가 오질 않았다. 난감해하던 조리실 실장은 본인이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은 하면서도 자꾸 나를 쳐다본다. '뭘? 어쩌라고요.' 속으로 생각은 했지만 창고에서 20kg짜리 쌀을 가져다 달라는 소리에 성큼성큼 창고로 향하던 순간. 바로 엮였다. 그대로 밥 짓기 담당이 되었다.
명동밥집에서 밥 짓기는 처음이다 보니 온 신경을 집중해서 설명을 듣고 더듬더듬 따라 해 본다. 다행히 쌀 씻는 기계가 있어서 쌀부대를 뜯어 쌀을 세척기에 넣고 물을 틀어 잠기게 한 다음, 타이머를 맞춰놓고 불리기를 한다. 타이머가 울리면 다시 기계를 작동하여 씻기를 마무리한다.
잘 씻겨진 쌀을 작은 스테인리스 용기로 둥그런 밥솥에 4번 퍼담고, 큰 스렌테스 용기로 가득 물을 담아서 손등이 잠길 정도로 맞추고는 긴가민가 한다. 6개의 밥솥 화구에 밥 짓기를 시작하고 밥이 익는 사이 건너편 빨간 국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 떡볶이를 보자, 참지 못하고 자리를 옮긴다.
참지 못하고 자리를 옮긴다.
떡볶이와 밥이 조리되는 동안에 조리실 한쪽에서는 '순대'가 포장상태를 뜯지 않은 채로 보글보글 끓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끓고 있는 비닐포장 안의 순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제조공장에서 썰어서 포장된 것인지? 아니면 주방에서 썰어야 하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가끔 잘려있지 않은 도토리 묵이나 두부를 배송받으면, 그날은 조리실이 갑자기 분주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떡볶이로 인해서 노동의 강도가 평소의 두 배를 육박했는데 뜨거운 순대까지 썰어야 한다면 그야말로 초주검이다. 다행히도 순대는 이쁘게 잘려 있었다.
'앗싸!' 하는 환호와 함께 뜨거워진 순대는 칼로 엑스자를 팍팍 긋고 별다른 추가 과정 없이 곧바로 바트(용기)에 담겼다. '끓이고, 뜯고, 담고.' 별도의 조리 과정이 없다 보니 이보다 더 간단할 수는 없다. 식단을 구성할 때 떡볶이와 순대를 함께한 이유가 나름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