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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Aug 08. 2022

시장에 가면, 수락산

수락산 천문 계곡

수락산은 서울의 북쪽 끝자락에 있는 산이다. 그러다 보니 경기도 남양주시와 의정부시가 걸쳐있다. 나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서울의 지하철역인 '수락산역'에서 내리거나 아니면 수락산역 공영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해서 정상인 '주봉'을 오르곤 한다. 하지만 오늘은 들머리가 의정부 쪽이다.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에서 9시에 동호회 사람들을 만나 의정부 가는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하차하는 정류장은 '검은 돌'을 지나 '고산동 빼뻘'이다. '검은 돌'이라는 정류장이름도 특이한데, ' 빼뻘'이라는 이름은 더욱 그러하다. 20여 년 전에 미군부대가 있던 당시 '배밭'이 많던 마을이라서 미군들 발음에 '빼뻘'이라고 했던 것이 아직도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지금은 철수한 미군부대 담벼락을 끼고 수락산 들머리에 들어섰다.


수락산(水落山) 은 한자에서 볼 수 있듯이 원래부터 물을 많이 머금고 있는 산이다. 더군다나 며칠 전부터 내리던 장맛비는 계곡마다 물이 넘치고 물놀이를 즐기는 등산객들로 아침부터 붐볐다. 오늘의 목적지는 '천문 폭포 계곡'이다.  평상시대로 한두 시간의 산행을 하고 정상에서 인증하고 하산길에 계곡을 갈 것으로 생각을 하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웬걸, 버스에서 내려 들머리에서 한 30분 정도 트래킹 느낌으로 가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가 동호회 공지문을 잘 못 이해하고 산행 신청을 한 것이다. 그래도 시원한 계곡 물소리가 기분을 좋게 하고 그나마 짧은 트래킹이지만 땀도 쪼금 나서 개운해졌다. 몇 년 전만 하더라고 한적했던 곳이 유투뷰, 블로그를 통해서 알려지면서 좋은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아서 좀 더 상류로 올라가 겨우 자리를 잡았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하루 종일 비가 온가고 했던 터라 일행은 우선 타프(햇빛 가래 개 용도의 천막)부터  계곡을 가로질러 설치를 했다. 아무리 물놀이 산행이기는 하지만 비를 쫄딱 맞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몇 차례 지나가는 비는 내렸지만 큰 소나기는 없었다.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요기를 하고 계곡물에 등산용 의자에 앉아서 '시장에 가면'이라는 놀이를 했다. 꼬맹이 시절에 '네 박자' 게임으로 무릎과 박수를 치면서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물건들을 돌아가면서 외치는 것이다. 앞 차례의 물건까지 외치고, 나의 물건을 외쳐야 하기 때문에 기억력과 순발력이 필요했다. 만약 틀리면 다른 사람들이 사정없이 물벼락을 날렸다.  한참을 웃고 떠드는 사이에 옷은 이미 속옷까지 흠뻑 젖어 버렸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시장에 가면, 순대도 있고, 사과도 있고, 상추도 있고, 팬티도 있고~"


계곡 물놀이 후에 조금은 아쉬워 상류 쪽으로 좀 더 트래킹을 했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또 다른 멋진 폭포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이왕 젖은 몸인지라 풍덩, 폭포 밑으로 입수하여 폭포수를 온몸으로 받고 나름 멋진 사진도 몇 장 건졌다. 내 친 김에 아까 그냥 지나쳐온 '천문 폭포'로 내려가 커다란 폭포 물줄기에 몸을 담그고 떨어지는 폭포수를 머리로 버티면서 몇 초를 버텼다. 혹시나  빠진 머리카락의 모공이 자극을 받을 려나 하는 기대감이 잠시 스쳐갔다.  자리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단속반' 아저씨들이 들이닥쳤다. 산에서의 '화기사용(불 피우기)'와 '음주'에 대한 단속이었다. 바로 아래쪽에서 '닭백숙'을 끓이던 사람들이 단속에 걸렸다. 표찰을 보니 의정부시 공무원이었다. 우리가 가져간 라면은 그대로 배낭에 꼭꼭 숨겨두었다.  


하산 후 뒤풀이는 다시 버스를 타고 당고개 역 근처에서 시원한 생맥주에 먹태를 먹기로 했다. 이제는 산행 동호회 회원들도 내가 채식을 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날 배려해 준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항상 미안한 생각이 든다. 역 앞에 커다란 '한국 통닭'이라는 호프집이 있었으나 그 집을 피해 근처 호프집을 2군데나 들렀으나 분위기가 별로 였다. 하는 수 없이  통닭집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젠장, 왜 이 통닭집에는 먹태를 안 파는 걸까 하는 투덜거림으로 '치킨무'를 안주 삼아서 500 씨씨 생맥주를 2잔이나 연거푸 비웠다. 회원들과 헤어지고 상계동의 본가에 들렀다. 배는 빵빵했지만 모친이 만들어주신 아보카도 비빔밥에 게딱지장을 넣어 만든 저녁을 먹었다. 모친에 눈에는 채식하는 아들이 안쓰러워서 뭐라도 먹이려고 하신다.


이렇게 넉넉한 포만감으로 또 하루해가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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