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묻은 밤

by naeun

아무것도 아니다.

고통은 거대한 유혹

공책 귀퉁이에 적은 그 말을 두고

한참 책상에 앉아 있다.

움직이지 않는 펜 끝,

식은 차에 먼지가 가라앉는다.

인간은 우주를 떠도는 티끌이라는 말

이 밤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도쿄시장'이라는 간판의 술집에 들른다

이상하게 눈물이 먼저 고인다.

유리처럼 맑은 것들이

나도 모르게 턱 끝까지 차오른다.

나는 종이를 끌어와

문장 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활자 사이에 이마를 박듯

나를 구겨 넣는다.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하던

너의 맑은 눈을 떠올리며

아무것도 아닌 내가

잠시 사람처럼 느껴진다.

더 쓰지 못하고

펜을 내려놓는다.

오늘의 말들은

끝내 쓰레기통에 구겨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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