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음성을 다녀오다

by sommeil



4월 15일 아침 어머니, 남편과 나는 도곡동 시누이집으로 향했다.

남편의 10일간의 일정에 맞춰 매년 4월이면 시아버님 영탑과 친정부모님 산소를 방문했다.

일종의 연례행사였다.

다행히 아버님을 모신 영탑과 친정부모님 산소가 같은 지역인 음성이라서 하루에 방문할 수 있었다.





시댁의 종교는 불교라서 아버님을 음성에 있는 한마음 선원 광명선원에 모셨다.

해마다 음력 2월 아버님 기일이 되면 우리는 방콕에

있는 태국지원 한마음 선원에서 아버님 기제사를 올렸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또한 비슷한 시기에 기일이 있어서 우리가 오는 4월이면 항상 영탑과 산소를 방문했다.

친정어머니는 2001년 4월에 돌아가셔서 햇수로 24년이 되었다. 당시 나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임신 7개월이어서 어머니 임종을 볼 수 없었다. 남편은 나 대신 발인에 참여해서 한국을 방문했었다.

2022년 10월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방콕에 있었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때 4년 만의 한국 방문에 2022년 5월 아버지를 뵜었는데 채 5개월 만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남편은 그 이후로 시어머니가

혼자 계시는 걸 걱정스러워하면서 1년에 두 차례 4월과 10월 한국 방문을 약속했다.


고모는 우리가 해마다 방콕에 있는 절에서 아버님 기제사를 올리는 걸 알고 있어서 한국에 우리가 올 때면

함께 영탑과 산소를 가주려고 했었다. 작년에는 남편과 둘이 고속버스와 택시로 다녀왔었는데(나나 남편은

바쁜 한국생활을 알기에 웬만하면 우리끼리 가려고 하는 편이다.) 이번에는 고모가 먼저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서울에서 음성은 장거리라서 하루 소풍 간다는 마음으로 올해도 어머니와 함께 다녀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궂은 날씨에 춥고 바람도 많이 불었는데 오늘은 춥지도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우리가 아버님, 아버지, 엄마를 찾아뵙는 걸 아시는지 날씨가 유독 쾌청하고 하늘은 더욱 파랗고 높아 보였다.

고모가 준비해 온 샌드위치를 선원 공양간 앞쪽에 있는 테이블에서 어머니, 남편, 고모와 같이 점심을 먹으며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잠시 그곳에 머물렀다. 5월이면 곧 돌아올 부처님 오신 날 행사로 경내에는 다채로운 연등과 영가등이 달려 있었다. 어머님과 우리들은 함께 사진을 찍고 부근의 대지공원묘지로 향했다.


차로 15분 정도 가니 친정아버지, 친정 엄마 산소에

도착했다.

고모와 어머니는 한쪽에 차를 대고 차 안에서 기다리셨다. 남편과 나는 준비해 온 꽃을 산소 앞에 가지런히

놓고 잠시 묵념을 했다.

엄마는 20년 전이라 매장을 해서 산소에 모셨고 3년 전 아버지는 화장을 해서 유골함에 모셔 엄마 산소에 함께 합장을 했었다.

작년에 왔을 때 봉분이 좀 내려앉았었는데 새로 봉긋이 올라와 있고 잔디도 자라나서 보기가 깨끗하고 좋았다. 남편과 나는 엄마, 아빠에게 인사드리고 고모차에 올랐다.

남편이 서울 올라가는 동안 잠시 휴게소에 들르자고 해서 덕평휴게소에서 내렸다.

장시간 운전으로 피곤할 고모에게 따듯한 커피를 주고 간식거리를 나눠먹으며 잠시 쉬었다가 서울로 출발했다.


남편은 매년 4월이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영탑과 산소는 꼭 방문한다.

친구를 만나든 다른 약속이 있어서 어디를 가든 항상 아버님께 인사드리는 걸 기본으로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요즘 사람과 많이 다른 부분이 많지만 나도 30년 가까이 같이 살다 보니 남편의 가족애는

누구보다 끈끈해 보였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아빠를 많이 존경하고 아빠 말씀을 잘 따른다.

가족에게 잘하듯이 내게도 말보다는 행동으로 잘 대해주고 약속도 잘 지켜준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발인 때까지 누구보다 신경을 많이 써줘서 고마웠다.





사실 우리가 한국을 오게 된 것도 불과 4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애들 교육하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다.

방학 때 어쩌다 한 명씩 아이들을 서울에 보냈고 우리는 거의 한국을 가지 않았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1년에 2번씩 와서 아이들 얼굴도 보고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도 보게 되니 너무

감사한 마음뿐이다.


나 역시도 불자라서 조상을 잘 모셔야 우리 세대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까지 무사안일 잘 되리라는 믿음이

있다. 가족 모두 큰 탈없이 건강하니 그것이 가장 기쁘고 행복하다.


오늘 유난히 날이 좋았다.

하늘도 푸르고 맑았다.

내 마음처럼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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