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 남편은 휴가 마지막 날 방콕으로 출국했다.
나는 시댁에서 녹번동으로 아이들과 함께 이동했다.
그동안의 빡빡한 스케줄 때문인지 녹번동에 도착하자마자 각자의 침대에 누워 긴 낮잠을 잤다.
이제는 마음이 아닌 몸이 바쁠 예정이다.
아이들 집에 오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아무래도 시어머니와의 동거보다는 당연히 여기가 편하다. 애들 밥을 해주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뭐가 없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나와 남편이 다듬고 어머니가 양념해 주신 파김치와 신 배추김치랑 총각김치가 조금 있었다. 둘째가 조금 뒤 길 건너 마트에 가서 같이 장을 보자고 했다.
딸은 항상 출퇴근으로 바쁘고 퇴근후나 주말에는 남자친구와 보내느라 거의 집에 머물 일이 없었다. 대신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내는 걸 신경쓰고 행정적인 일들을 책임졌다.
둘째와 막내인 두 아들들이 살림을 했다.
둘째는 집안일에 거의 신경을 안 쓰고 빨래만 주로 하고 막내가 청소, 시장보기, 쓰레기 버리기 등 주로 살림을 해왔다. 우리가 매달 용돈을 송금해 줘도 아르바이트하며 학교 다니느라 빠듯해 보였다.
나는 일단 널려있는 빨래를 개고 가득 쌓인 빨래부터 돌렸다. 6개월 만에 오니 모든 기억이 초기화되어 둘째에게 다시 세탁기 사용법을 물었다.
두 아들들은 외모와 패션에 관심이 많아 나름 옷이 상하지 않게 세탁하고 건조기 사용방법이 따로 있었다.
둘째는 계속 누워 있다가 내가 세탁기를 돌리겠다 하니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일어나 세탁기 온도 설정과 속옷, 수건만 건조기를 돌리라고 알려줬다.
막내는 내가 있을 누나 방을 청소기로 치우기 시작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도 화장대나 침대 머리를 물티슈로 닦고 치웠다.
둘째랑 마트에 갔다. 나보고 이게 맛있다는 둥 신나서
라면, 소시지, 만두, 햄, 기름 등등 카트가 가득 차게 담았다. 오랜만에 엄마가 오니 그동안 못 먹은 걸 신나게 고르고 있었다. 이럴 때 엄카찬스 쓰는 거지 뭐.
난데없이 둘째가 기다란 분홍 소시지를 들고 왔다.
계란으로 부쳐달라고. 내일 아침 반찬으로 해달라고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해주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됐다.
엄마, 배고파. 소시지 부쳐줘
나는 해달라는 대로 소시지를 부쳐 줬고 신 총각김치를 씻어서 잘게 썰어 깍두기 볶음밥을 해줬다.
둘째는 신나게 먹었다. 친구가 말해준 분홍 소시지가 계속 먹고 싶었단다.
나는 소시지는 몸에 안 좋으니 먹지 말고 라면도 되도록 먹지 말라는 어떠한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23,24살이면 알 거 다 알 나이다.
그냥 애들이 해달라는 거 해주고 싶었다.
지난 10일 동안 충고 아닌 잔소리로 어머니 얘기를 들으니 애들한테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 이제 좀 쉬어. 편하게 있어
둘째가 말했다.
내가 그동안 귀에서 피가 났었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고마웠다. 그런데 여기서는 몸이 고단해질 모양새다.
그래도 그동안 엄마밥, 엄마빨래, 엄마청소 모두 그리웠을 것이다. 힘들어도 해줘야지.
막내는 갑자기 안긴다. 내 배를 만지고 내 정수리에
코를 박는다.
아, 엄마 냄새. 꼬순내
머리도 안 감았는데 좋단다. 이 배는 어쩔 거야 라면서
내 배를 툭툭 친다. 그래, 나 엄마였지. 뭘 특별히 안 해도 덩치 큰 아들들이 엄마라고 자꾸 부르고 하니 이게 사람 사는 거구나, 이게 행복이구나라고 느낀다.
그냥 옆에 누워만 있어도 자기 친구들과 전화만 해도
아니 뭘 딱히 안 해도 옆에 있으니 좋고 내 눈에 보이니 좋다. 5월 말까지 1달 남짓 남았다.
함께 구경도 다니고 맛난 것도 먹고 좋은 시간 보내야지. 애들 챙기라고 내 자유시간도 가지라고 넉넉히 시간 줬겠지.
길게 휴가를 준 남편에게 새삼 고맙다.
옆에서 마이클 잭슨 노래를 부르며 종알거리는 막내가
자꾸 말을 건다.
같이 얘기나 하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