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도전으로 꿈을 이루었다.

by 이만희

2008년 학교 예술제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사물놀이부를 맡았다. 전통 음악에 대한 이해도 없고 사물놀이 가락이 있는 줄도 모르는 나에게 사물놀이는 근심이었다. 사물놀이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고령자들이어서 각자의 사정이 많았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연습하는 것도 어려웠다. 사물놀이는 흥이 있어야 하는데 듣는 사람들의 흥을 이끌어 내지도 못했다.


재창조한다는 결심으로 강사와 학생을 모두 바꾸었다. 젊은 강사와 10대 후반의 학생들로 바꾸면서 이름도 ‘하늘소리’라고 짓고 동아리로 등록했다. 징, 꽹과리, 북, 장구에 흥미와 관심도 없던 아이들을 정해진 시간에 한자리에 불러 힙합도 아닌 전통 가락을 연습시키는 일은 지금 생각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우선 아이들이 모이면 연습보다는 게임이나 놀이를 통해 친목을 다지게 했다. 그러면서 서로의 고민과 아픔을 나누었다. 그러자 차츰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로 아이들 간의 관계가 발전했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가락을 익힌 아이들은 장구, 북, 꽹과리, 징과도 친해졌다. 각자 악기를 다루면서 나태했던 자신을 깨우고 장애로 힘들어하는 자신을 달래는 듯했다. 연습하는 소리는 흥과 가락이 담겨 있어 나를 포함한 우리 스스로를 달래는 비타민이 되었다.


연습을 아침 시간대로 옮기자 아이들 스스로 부지런한 태도로 변했다. 연습이 있는 날은 조용했던 학교도 생기가 넘쳐났다. 우리 학교에 전학 온 학생들이 제 발로 사물놀이부를 찾아오는 새로운 현상도 생겨났다.


연습 때문에 손이 까지고 피가 나면서 채는 붉게 물들었고, 연습을 마치면 밥 수저를 들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이런 열정에 힘입어 많은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여러 단체에서 공연 요청을 받기도 했다. 복지관, 소년원, 학교, 공공기관 등 어린 학생들로부터 소외계층까지, 많은 사람들이 우리 학교 사물놀이 ‘하늘소리’의 웃다리 연주를 들으며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눈물을 쏟아 냈다. 더욱 자랑할 만한 것은 제10회 전국사물놀이경연대회 동상, 제18회 논산세계사물놀이대축제 뽐내기 부분 3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둔 일이다. 전공자들과 함께 같은 무대에 서서 기죽지 않고 당당히 연주하는 모습에 심사하는 분들과 관계자, 다른 경쟁 학교 학생들도 환호를 보내 주었다.


10분 동안 신들린 듯이 북, 꽹과리, 장구, 징을 치면서 무대 뒤로 걸어 나오는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어깨를 만져 줄 때 뜨겁게 달구어진 몸을 느끼고 새삼 열정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그 시절 유쾌한 도전을 함께했고 행복한 추억을 남겨 준 아이들이 지금도 가끔씩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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