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입학 상담을 했던 안동에 사는 30대 종엽(가명)씨가 질문했다.
“선생님, 그 학교에서는 안마 말고 또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
나는 대답할 수 없어 잠시 머뭇거렸다. 종엽씨처럼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중도실명한 2030 청년들에게 안마만을 가르치는 우리 학교에 선뜻 입학하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다른 지역에도 안마를 가르치는 수련원과 특수학교가 있어서 굳이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근무하는 학교로 오라고 할 수 없었다. 결국 종엽씨는 우리 학교를 입학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안마 말고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나는 매일 이 질문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동료선생님들과 회식을 해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날도 아침조회 시간에 ‘좋은 생각’ 소리잡지를 음성으로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마침 사연의 주인공이 광주에 사는 시각장애인이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여 서울시 공무원으로 최종 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연을 함께 들은 학생들이 나에게 질문했다.
“선생님,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공무원이 될 수 있나요?”
나는 인터넷 검색과 커뮤니티를 통해 공무원에 장애인직렬이 있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장애인들에게 공무원대비를 위한 인터넷강의 수강 패키지 지원 사업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 명의 학생에게 장애인 공무원 직렬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고, 공무원 시험 인터넷 강의 수강도 듣게 해 주었다. 공무원 진출에 체계적인 지원을 하고 싶어 동아리 형태로 운영하기로 결심했다.
2020년 학교 교육과정에 공직진출동아리를 개설했다. 공무원을 목적으로 들어오는 2030 청년 시각장애인들이 학교에 많이 입학하기 시작했다.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다가 시력이 손상되어 입학한 J씨, 상주에서 영어학원 원장으로 근무하다가 녹내장으로 인해 실명한 L씨, 대학을 졸업하고 안마원을 운영하다가 공무원이 되고자 다시 입학한 K씨, 법대를 졸업하고 혼자서 공무원 준비가 어려워 입학한 K씨, 직장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실명한 K씨, 소방공무원으로 복무하다가 자가면역질환으로 실명해 온 C씨 등이 공무원대비동아리에 들어왔다.
공무원대비동아리 이름을 ‘가온’이라고 지었다. ‘가온’은 세상에 중심이라는 뜻의 순우리말로, ‘가온’반 학생들이 학교의 중심이 되라는 뜻이었다.
‘가온’반 학생들은 1년에 세 번의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4월에 국가직 공무원, 6월에 지방직 공무원, 7월에 군무직 시험이었다. 학생들이 세 번의 시험에 응시할 때마다 사이버국가고시센터에 회원가입과 편의지원 신청을 해 주었다. 학생이 요구하는 편의지원 항목이 선택하는 항목 탭에 없으면 직접 인사혁신처나 시(도)청의 인사과에 전화를 걸어 항목을 생성해 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편의지원으로 ‘점자정보단말기’를 인정하지 않는 담당자에게는 관련 법규나 규정을 찾아 전자메일로 보내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기관에 공문을 발송했다. D시청의 담당자는 “선생님이 뭐 하는 사람인데 왜 자꾸 민원을 제기하냐”라고 불평도 들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공무원 시험을 지도하는 지도교사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결국 인사혁신처와 각 시(도)청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점자정보단말기’가 도입되도록 하였다.
우리 ‘가온’반 학생들이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했다. 학교 도서관에 국어, 영어, 한국사, 행정학 관련 개론서와 기출문제지를 비치해 놓았다. 기출문제지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학생들이 점자나 파일로 읽을 수 있도록 제작했다. 또한, 과목별로 온라인 강의를 편안하게 들을 수 있도록 기숙사 내 공부방도 마련했다.
학생들 장애 정도에 따라 노트북, 독서확대기, 스크린리더, 점자정보단말기도 대여해 주었으며 사용법도 지도했다. 주 1회 과목별로 기출문제를 점자나 확대글자로 인쇄하여 시험장과 똑같은 조건에서 모의평가도 보았다. ‘가온’반 학생들과 단톡방을 만들어 공무원 시험 정보와 출제 경향 및 학습 동기유발 영상도 공유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자조모임도 만들어 간식도 주고 선배들에게 과목별 학습 전략 및 공무원 시험 응시 경험을 들었다. 개별 상담을 하면서 지원받고 있는 온라인 강의가 중단되지 않도록 학습 참여 독려와 공무원의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였다. 5년간 공무원이 되고 싶은 학생을 모집하고 공직진출동아리를 지도한 결과 올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되었다.
2024년 대전광역시 지방공무원 임용 시험에 지수씨가 최종 합격했다. 지수 씨는 작년에 학교에 입학하고 ‘가온’반에 들어왔다. 안마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었지만 우리 학교에 운영 중인 공직진출대비반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지수씨는 학교 수업을 일주일 정도 듣고 휴학하려고 나를 찾아왔다. 나는 지수씨와 어머님께 공무원 합격도 중요하지만 합격 후 공직문화에 잘 적응하고 안정적으로 정년을 맞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인 보행, 점자, 보조공학기기 활용법 등을 알지 못하면 조직생활이나 직무수행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하였다.
우선 6월에 있는 지방직 공무원 대비를 위해 오전에 학교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조퇴하여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도록 배려하였다. 작년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 아깝게 떨어진 지수씨는 그때부터 보행지도사, 점역교정사, 안마사, 바리스타 등 학교 교육과정에 성실하게 참여하였다. 학교에 들어와 시각장애인으로 갖추어야 하는 기본 소양을 배우고 작은 성취감을 느낀 지수씨는 놀라울 정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공무원 시험에 최종 합격한 지수씨는 학교에서 배운 시각장애인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발휘하고 지역사회에 재능을 헌신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5년간 공직진출동아리 운영을 통해 학생의 공무원 합격이란 결실을 맺게 되어 정말 기뻤다. 처음에는 주변에서도 “특수학교에서 무슨 공무원이냐?”라고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남들이 인정하거나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우리 학생을 공무원으로 만들기 위해 뼈를 갈아 넣는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지치고 힘들어도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싶었다. 이번 지수 학생의 공무원 합격을 통해 후배나 다른 학생들도 공무원의 꿈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5년 전 삶이 던지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공무원대비동아리를 운영하게 되었다. 삶이 던지는 질문들이 나를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변화하게 만들었다. 나는 현상 유지가 아닌 미래를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믿고 자기 신념을 가졌다. 질문을 통해 가치를 창조하고 삶에서 고유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책임감도 생겼다. 학생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기보다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었다 삶이 던지는 질문에 피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내가 만족스러운지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공무원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고 학생이 영향을 받았다고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데서 진정한 만족감을 느꼈다. 나는 주는 것으로 삶을 만들어갔다. 진정한 행복은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