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는 뿌리였고, 사랑은 잎사귀였다.

by 이만희

고뇌가 내 삶을 짙게 물들인다. 나는 그것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고뇌는 삶의 짐이 아니라, 내 존재를 더 깊은 빛으로 가꾸는 도공의 망치이기 때문이다.

나는 40대의 시각장애 교사다. 세상의 빛은 흐릿하지만, 아이들의 목소리와 숨결은 언제나 선명하다. 그 속에서 나는 길을 잃지 않는다. 교단에 서는 매일이 나 자신과의 투쟁이고, 동시에 세계와의 화해다. 학생들이 내게 배우듯, 나 또한 그들에게서 배운다.

사람들은 편안함을 꿈꾸지만, 나는 편안함만을 좇지 않는다. 고뇌의 날들이 내 삶을 단단하게 하고, 불편의 순간들이 나를 진짜 나로 만든다. 나를 존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일은 단순한 자기 위안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를 세우는 근본 작업이다.

나는 가끔 의도적으로 고립을 택한다. 산책길, 나무와 바람이 내 곁을 스쳐가는 시간. 그 고요 속에서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다. 세상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들려오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의 목소리다. 그것은 나를 나에게로 데려오는 길잡이다.

책을 읽는 일도 같다. 나는 속도를 좇지 않는다. 빨리 읽으려고 하기보다 한 문장에 멈추어 오래 머문다. 사유는 느린 걸음에서 피어나고, 느린 걸음은 내면을 단단하게 한다. 지식은 쌓이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것이다. 책의 문장은 내 안에서 침전물이 되어 무게를 더한다. 그 무게가 나의 말이 되고, 나의 행동이 된다.

삶은 전쟁 같다. 그러나 그 전쟁은 파괴가 아니라 창조를 향한다. 고통은 나를 꺾지 않고, 오히려 나를 새롭게 빚는다. 고뇌는 짐이 아니라 빛이다. 빛은 언제나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해진다. 관계에 집착하는 학생들을 자주 관찰한다. 타인의 시선을 붙잡으려 애쓸수록 불안은 깊어진다. 나도 그 함정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나, 이제는 안다. 내 안이 충만하지 않으면 어떤 관계도 건강할 수 없다. 사랑은 바깥에서 오는 선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내가 나를 존중할 때, 학생들을 존중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 사랑을 가르칠 수 있다.

노동 역시 내 삶의 신성한 의식이다. 교단에서 흘린 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마음속 어딘가에 씨앗처럼 남아 언젠가 싹을 틔울 것이다. 그 싹을 내가 보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뿌리는 순간 자체가 이미 의미이자 가치다. 노동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세계와 맺는 가장 순결한 관계다.

나를 향한 비난들이 마음을 흔들 때, 말투를 바꾼다. 우울한 말은 우울을 번지게 하고, 긍정의 말은 빛을 확산시킨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존재의 방향이다. 내가 뱉는 언어는 곧 내가 살아갈 내일을 그린다. 그러므로 나는 가능한 한 밝은 말을, 따뜻한 말을 선택한다. 그것이 곧 내 삶을 조금 더 낙관으로 끌어당긴다.

나는 여전히 학생이다. 교단에 서 있지만, 삶 앞에서는 언제나 배우는 사람이다. 시련을 통해 단단해지는 법, 사랑을 주고받는 법,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내 삶의 모든 순간이 수업이고, 그 수업은 나의 제자들에게 이어져 또 다른 배움이 된다.

삶은 끊임없이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나는 오늘도 그 질문 앞에 선다. 정답은 없다. 다만 나는 고뇌와 사랑으로 답하고 싶다. 고뇌는 내 삶의 뿌리였고, 사랑은 그 뿌리에서 자라난 잎사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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