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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Aug 04. 2021

밀가루 없는 빵이라고?

건강 호박빵으로 여름 나기

올여름 우리집 부엌에는 늘 찜 냄비가 올려져 있다. 단호박이 나의 주식이 된 것이다. 제주 농원의 단호박 맛에 빠져 박스로 주문했다. 난 그냥 먹어도 맛있기만 한데 가족들은 잘 먹지 않아 주로 혼자 먹고 있다. 오늘은 어떻게 하면 남편, 아들 손이 가도록 해볼까? 유튜브를 검색해 본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단호박 요리가!! 우리집 단호박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으른 주인이 변신은 해주지 않고 오로지 뜨거운 김만 쏘았으니 말이다. 고작 샐러드가 다였는데... ‘간단하고 맛있는 제철 단호박 요리 3가지’ ‘이거 아니면 안 돼!! 단호박 요리 15가지’ 순식간에 만들어 낸 요리들 비주얼도 좋다. 역시 금손들이다. 도전해 볼까? 생각하면서도 날도 덥고 재료도 호박밖에 없다. 최대한 간단하게 하면서 색다른 것은 없을까?      


시도할까? 포기할까? 고민 중에 ‘설탕× 밀가루× 오븐× 다이어트 단호박 빵’이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아니 설탕과 밀가루가 안 들어간 빵이라고? 믿기지 않는 마음으로 터치한다. 어디서 본듯한 예쁜 여인이 노~노~노~라고 외치며 단호박, 계란, 아몬드만 있으면 빵이 된다고 항변한다. 가정집에서 하는 것을 보니 주부인가? 호박을 자르는 그녀가 씨를 빼면서 ‘아우~씨~’ 순간 놀랐다가 ‘씨도 귀여워요~’해서 웃는다. ‘도미솔’ 1도 화음 같은 그녀의 어투가 마음에 든다. 요리 중 빈틈에 단호박에든 베타카로틴이 비타민A 공급원으로 면역체계를 활성화하여 노화를 막고 인슐린 분비 도와준다는 짧은 건강강의도 예사롭지 않다. 그녀 이름을 검색해 보니 유명 한의사이다. 나의 무지를 통감하며 착한 학생 되어 경청했다. 용기 뚜껑이 없는 사람은 랩을 덮어 구멍을 뚫으라며 보여주는 터프한 손길도 마음에 든다. ‘제가 이 정돕니다~’라고 자기 자랑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하라고 한다. 오~센스!하며 킥킥댔다. 찐 단호박과 계란과 아몬드를 넣어 믹서에 갈고 그릇에 올리브 오일 발라 전자레인지 6분이면 끝나는 초간편 건강빵!. 그래 바로 이거다. 간편하고 건강한 음식! 내가 찾던 바로 그 요리법이다.  


코로나로 남편이 부산에 있는 아들을 픽업하러 갔다. 짜잔~하고 내놓을 간식으로 딱이다. 수박(이것도 유튜브에서 배운)주스를 만들고 호박빵은 아몬드가 없어 땅콩을 넣어 만들었다. 벌겋게 들어오는 두 남자에게 빨간 수박 주스와 노란 호박빵을 파란 긴 접시에 담아 내어놓았다. 과묵한 경상도 사나이들 이렇게 예쁜 간식을 보고도 리엑션은 실로 점잖다. ‘맛있지 않아?’ 더 큰 반응을 기대하며 건강빵임을 강조하니 그래도 아들이 ‘오~그래요! 먹을만하네요’하며 성의를 생각해서 먹는 기분이 든다. 맛이 너무 건강했나? 아몬드가 들어갔으면 더 낳았으리라 생각하며 더 사랑하는 사람이 ‘을’이라는 말이 떠올라 웃는다.   



 

이튿날 ‘책~그놈!’ 모임 날이다. 똑같은 메뉴를 준비해갔다. 수박을 갈아서 포트에 담고, 아몬드가 없어서 이번엔 노란, 검정 통깨를 듬뿍 넣었다. 산책 전에 벤치에 앉아 ‘짜잔~맛보아요~’ 꺼내놓았다. 하나같이 감탄하며 어떻게 만들었냐? 레시피가 뭐냐? 대단하다. 맛있다. 나도 해봐야겠다. 역시 아모르는 금손이다. 과한 리엑션인 줄 알지만 행복감이 차오른다. 다음날 바로 카톡 사진이 날아온다. B 언니는 견과류와 블루베리까지 넣어 만들었다. 실천력 대장이라며 S 언니가 응원해 준다. 역시 언니들은 언제나 행동력, 창의력, 공감력이 대단하다.       


단호박을 앞에 두고 자세히 보니 그 모양새 앙증맞고 야무지다. 비와 바람, 대지의 기운, 농부의 정성으로 자라 나에게까지 온 호박이 새삼 감사하다. 호박꽃, 호박씨에 붙은 불명예에 굴하지 않고 굳세게 영글어간 호박. 짙은 녹색의 우둘투둘한 표피에 감싸인 다디단 속살 또 자손들은 얼마나 많이 품고 있는가. 호박의 존재가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한 씨앗이 품고 있던 생명의 진수이다.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이다. 호박을 앞에 두고 마음이 경건해진다. 한데 빵을 만들어서 주고 싶은 사람들이 자꾸 떠오른다. 아마도 여름 내내 호박 빵 들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 입에 넣어 줄 것 같다. 그들의 노란 미소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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