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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Aug 16. 2021

짝사랑 성공기

호박케이크에 깃든 일상 이야기

그래 한번 만들어 보자. 동네 유기농 빵집 케이크를 보니 저 정도라면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유튜브가 생각나 의욕이 샘솟는다. 밀가루 없는 호박 빵에 열중하다가 계란 흰자를 분리해 거품을 내면 케이크처럼 만들어지는 영상을 보았다. 노른자와 흰자를 섞어 만든 지난번 호박 빵은 떡과 빵의 중간 밀도로 중년용이라면 흰자를 거품 내어 만든 것은 부드러워 청춘용으로 보인다. 이 단순한 원리를 몰랐던 것은 아닌데 실행해 보게 하는 유튜브가 고맙다.      


몇 달 만에 서울 사는 큰아들이 생일날 내려오기로 한 것이다. 기다리던 날이지만 몇 일간 생기부 쓴다고 몸을 혹사했고 백신 후유증으로 열과 근육통이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김치 정도는 담고 싶었다. 타이레놀로 몸을 달래가며 배추 한 포기, 열무 한 단 담았다. 지인들의 안부 카톡에 근황을 알리니 ‘엄마는 강하다ㅎ’, ‘짝사랑이 오면 몸이 고단하죠ㅎ’, ‘아들 바보군ㅋ’ 딸이자 엄마인 여인들 반응이 다양하다. ‘짝사랑’이란 말이 계속 마음이 머문다. 기대하는 마음 내려지고 묘하게 행복하다. 세상의 엄마들은 너나 없이 짝사랑에 빠졌었거나, 빠졌거나, 빠질 것이다. 



여기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녀는 나의 시누이다. 남편의 누나이니 나이가 많지만 미스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시누이는 엄마인 나보다 짝사랑이 더 심하다. 지금도 해마다 딸기를 봉지 봉지 얼려 주고 나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기도한다. 아이들이 오면 시누이를 부른다. 남 보기에 내가 대접하는 것 같지만 늘 과한 밥값을 받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형님의 두 손이 가득하다. 이번엔 내 가을 바지도 사 오셨다. 딱 나의 취향이다. “형님~ 이래 비싼 밥값 치루지 않아도 돼요~ 그냥 편하게 오세요~”라고 듣기 좋게 말하지만 형님의 센스 선물은 늘 반갑다.      


호박 케이크 만드는 법을 설명하니 “아- 딱 내가 할 일이 생겼네!” 거품기를 찾아 드신다. 의자에 팔을 걸치고 그릇은 다리에 끼고 전투태세다. 어깨가 아픈 사람이 천 번도 더 저을 수 있니! 저 단순 노동을 저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 모습 담고 싶어 거품기를 들어 보라고 했다. 나도 형님도 마음에 거품이 인다. 


사실 형님도 오늘 내 마음과 같을 거다. 몇 년 준비해 온 시험을 내려놓은 큰아들이 마음 쓰이는 것이다. 손 아프던 작은아들이 먼저 취업이 되고 걱정 않던 큰아들 진로가 다시 고민스럽게 된 것이다. 진정 자신이 원한 길이 아니었던 것 같아 부모로서 미안하다. 본인이 가장 힘들 것인데... 몰랐다. 형님도 나도 몰랐던 것이 미안하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마음 다해 거품기를 돌릴 뿐이다. 얼마나 저었을까? 드디어 크림처럼 되었다. 찐 단호박을 노른자와 섞고 요리에서 남은 당근도 넣고 흰자를 섞어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5분을 알리는 땡! 소리가 경쾌하다. 고소한 냄새와 부푼 빵. 손색없는 수제 펌프킨 케이크다. 초코시럽으로 하트를 그리고 간단히 장식했다. 



남편과 아들들이 돌아왔다. 허기진 세 남자 잡채에 먼저 손이 간다. “잠깐~”하며 큰아들 앉게 하고 고깔부터 씌웠다. 고모의 수고를 너스레 떨었다. 노래 부르고 컷팅하니 절단면이 더 예쁘다. 사이사이 끼어 있는 호박껍질(부드럽고 식감이 좋다)과 당근도 아주 효과적이다. 큰아들이 너무 맛있다며 점심은 찰밥 대신 빵을 먹겠다고 한다. 기분이 좋다. 큰아들 마음도 한껏 부풀어 나면 좋겠다. 오늘 짝사랑은 성공이다.     

 

큰아들이 내일 고모 댁에 가서 자신이 맛있는 요리를 해주겠다고 한다. 아들이 사랑 주는 법을 알아서 다행이다. 나를 짝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한다. 조만간 엄마께 천 번의 거품기를 저어 잔뜩 부푼 호박 케이크 들고 가야겠다. 엄마는 말할 거다. 이런 거 만들어 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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