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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Aug 22. 2021

보약 같은 카페라떼

소소한 일상 속 카페라떼 한 잔의 위로

여름의 끝 장대비가 쏟아진다. 라떼 생각이 더 간절하다. 마침 아들과 남편이 잠시 외출한다니 너무 잘 되었다. 혼자 커피 마시러 가고 싶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들러는 그곳 ‘카파’로 달려갔다. 차로 5분 거리다. 오늘은 특별 주문은 했다. “사장님~ 원샷에 조금만 더 넣어 주실래요?”. 연하게 마시는 편이라 평소 원샷만 해달라고하는데 오늘은 조금 더 진하게 먹고 싶다. 조그마한 가게 입구 벽에 걸린 내 그림을 본다. 정말 나도 참 못 말리는 오지랖이다. 지난겨울 카파의 라떼 마신 기분을 드로잉 한 것을 작은 액자에 넣어 드린 거다.      


처음 카파를 알고 “사장님~ 커피 맛이 좋은 이유가 뭐예요?” 여쭤본 적이 있다. “신선하고 좋은 콩을 쓴 다 아입니까~.” 당연한 것을 물어 나무라는 어투로 말했지만, 평소 과묵하신 사장님께서 이런저런 얘길 해주셨다. 오래전 C 대학의 스타벅스로 소문이나 일손이 달려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는 주변에 테이크아웃 카페들이 많이 생겨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그러나 맛은 카파에 비교되지 않는다.      




언젠가 아들 과일 주스를 주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딸기를 그렇게 많이 넣다니. 단골이라 그런 게 아니라 원래 그렇게 많이 넣고 요플레 토핑도 보면 누구나 깜짝 놀란다. 맛을 위해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쓰는 것이다. 나의 지인 진보주의 언니는 언제 호구 조사를 했는지 오랜 세월 365일 부부가 열심히 일하는데 집도 장만하지 못했다는 것은 구조적 문제와 노동 착취라며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언니가 하면 더 싸게 팔 게 뻔하다). 가격은 18년간 딱 두 번 올려 현재 아메리카노 1,800원, 라떼는 1,900원이다.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 거다. 일부러 현금을 준비해 거스럼돈 괜찮다고 하면 아니라며 꼭 100원을 거슬러 주신다. 그래서 그런가? 지인이 사장님의 딸을 가르쳤는데 성품이 바르고 공부도 잘해 좋은 대학을 갔다고 한다. 역시 자식은 부모의 발자국을 밟는다.      


난 혼자 시간이 생기면 커피 들고 차 안에서 주변 거리를 드로잉 하거나 C 대학의 호숫가를 간다. 아주 예쁜 호수인데 정작 대학생들은 없다. 청춘들은 스펙을 쌓기 바쁠까? 데이트하는 학생들이 있을 법도 한데 이 아름다운 공간은 늘 동네 어른이나 아기들 차지이다. 난 산책할 때 무조건 신발부터 벗는다. 흙은 맨발로 걸어야 제맛이다. 가끔은 나의 지정석 벤치에 앉아 책을 보거나 드로잉하기도 한다. 특히 마음 상한 날이면 이곳은 치유의 장소가 된다.      

     



비가 오니 커피 맛이 더욱 좋다. 생동감 있던 거리도 코로나로 인해 한산하다. 바로 C 대학으로 향했다. 호숫가 빈 차만 한 대 있고 아무도 없다. 신발을 벗고 젖은 땅을 걷는 이 기분을 누가 알랴? 짙은 호수 위 고운 수련이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노랗게 웃고 있다. 꽥꽥거리는 귀여운 거위들이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볼에 닿는 차가운 바람이 상쾌하다. 써머레이디, 마리안델, 슈와르쯔마돈나, 클레오파트라... 이름 불러 주며 걷는다. 어디 책 제목이었던가? 조금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빗속에서 꽃향기 더 짙다. 몸이 이완되고 가벼워진다. 직장에서 집에서 모두 노동이 과한 날들이었다.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감사하구나’ 몸속에 따뜻한 기운이 번진다. 커피, 장미, 물, 바람, 흙, 나무... 그리고 나. 그저 감사하다.      


차 안에서 하루키가 좋아한 곡 모음 CD를 틀고 눈앞의 흔들리는 나무를 드로잉 했다. 늘 보던 나무인데 오늘따라 더 멋지다. 흔들리면서도 젖었으면서도 단단히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도 마음에 든다. 일주일간의 피로가 눈 녹듯 녹는다. 소소하지만 라떼 한 잔이 나에게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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