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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Aug 29. 2021

맨발로 혼자 놀기

일상 속 자투리 시간에 근처 흙길을 맨발로 걸어 보세요~

퇴근길 카풀 동료가 일이 있어 먼저 간다고 한다.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인근 사찰로 향했다. 집에서는 20분 거리지만 직장에서는 10분이면 가는 곳이다. 주말에 가끔 들러는 곳인데 얼마 전 황톳길을 조성했다. 맨발 걷기를 위해 수도 시설도 갖추어 놓은 것이다. 신발을 벗는 순간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앗! 그런데 황톳길에 공사 중 바리게이트가 처져 있다. 비가 와서 부분적으로 유실되었나 보다. 아쉬움을 달래며 옆쪽 숲길로 향했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계곡이 폭포수가 되었다. 한쪽 길이 막히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말이 실감 난다. 길옆 차나무들이 제법 자랐다. 발바닥에 전해 오는 흙의 차가움이 온기로 느껴진다. 오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체로 고요하다. 붉은 흙, 녹색 바람, 푸른 물소리...갈색 풀벌레 소리.. 몸과 마음을 씻어 준다. 유독 말을 많이 한 날이다. 이런 날은 혼자 걸어야 제맛이다. 침묵 속에서 에너지가 차오른다.       


맨발 걷기를 알게 된 것은 오래전이지만 본격적으로 걷게 된 것은 2년 전 쌍계사 앞 붉은 황톳길을 보고 친구와 함께 신발을 벗고 걸은 날부터이다. 이후 매일 아침 집 앞 작은 숲길을 걸었다. 연수를 통해 실천하는 지인들이 있었지만, 겨울에도 맨발로 걷는다는 말에 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한데 지금은 겨울의 맨발 걷기도 즐기고 있다. 덕분에 두통과 손발 저림 증세가 많이 완화되었다. 지인이 초대한 ‘맨발의 청춘’이라는 단톡방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인정 샷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서로의 발들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낯설고도 아름답다. 1,000일을 넘긴 사람도 많다. 거의 수행자 수준이다. 지병이 낫고 건강이 좋아진 사례 담도 많이 올라오니 눈팅족인 나에게 좋은 자극제가 된다.    

  



‘맨발 걷기의 기적’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맨발의 효능을 요약하면 발의 지압으로 뇌를 자극하여 기억력이 좋아지고 혈액을 맑게 하며 접지를 통해 몸의 정전기를 흙으로 빼내고 활성산소를 제거해 준다. 또한 자연의 색과 소리로 마음의 평화를 얻어 결국 암, 심혈관 질병, 각종 성인병으로부터 해방된다. 가장 좋은 장소는 바닷가 젖은 모랫길이고 황톳길, 마사길, 숲길.. 등 흙이면 어디든 좋다. 40분 정도는 걸어야 효과가 있으며 운동 전과 중간에 스트레칭하면 더욱더 효과적이다. 단 혼자 걸을 때 주의할 점은 외진 곳은 피하고 신발, 차키, 핸드폰 등 소지품 관리를 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숲속을 홀로 헤매는 낭패를 겪는다. 기억력이 좋아져야 하는데 이상한 일이다. 물론 경험담이다.        


맨발 걷기 운동의 붐을 일으킨 권택환 교수님이 차에서 내려 즉각 맨발로 다니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태국을 자주 왕래하던 지인의 벗도 일상을 맨발로 지낸다. 사실 나도 도시의 거리를 맨발로 다니고 싶다. 불교 수행자 같을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맨발로 다닌다면 아프리카 원주민처럼 더 순수해지지 않을까? 상상해 보지만 그렇게 되면 신발회사가 맨발에 대한 위험한 실험 결과를 발표할 것이고, 건강보다 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으니 실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할 것이다. 그래도 도시의 보도블록을 부분적이라도 걷어 내고 흙길을 조성하면 좋겠다. 나무에도 인간에게도 좋을 텐데... 시청에서 힘들까? 또 다른 불편함이 생기겠지만 길들어진 문명에 오히려 인간이 속박을 받게 된 것은 틀림없다. 그나마 가까운 거리에 흙길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며칠 몸이 아프셨던 엄마에게 거품 가득 낸 호박 빵을 만들어 갔다. 맨발은 아니지만 40대부터 매일 새벽에 걸으신 나의 엄마도 대단하시다. 엄마의 피를 이어받았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배도 부르고 발바닥이 간지러워 결국 차를 세우고 신발을 벗었다. 강변의 저녁 바람과 가을을 재촉하는 풀벌레들의 3중창과 오색 찬란한 색등이 연출하는 판타지 풍광을 선물 받았다. 외롭지만 충만한 시간. 바로 이게 맨발로 하는 혼자 놀이의 맛이다. 돌아오는 길 요즘 새롭게 꽂힌 ‘백만송이 장미’ 노래가 흥얼 거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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