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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Sep 12. 2021

60년 뒤 라고?

잊고 사는 죽음을 생각하면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산청 호국원으로 모시는 날이다. 시아버님의 유골함은 아들이, 시어머님의 유골함은 형님이 품에 안았다. 지극히 아끼던 손주 품에 안겨 오래전 이별했던 아내와 영면하길 원하셨던 곳으로 동행하니, 아버님 기분도 좋으실 것이다. 


아내를 먼저 보낸 시아버님의 하나 뿐인 며느리 사랑은 특별하셨다. 돌아가시기 전 시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딸들 앞에서는 조용하시다가도 내가 가면 노래도 부르시고 말씀도 잘하셔 딸과 며느리가 바뀐 것 같다고들 하셨다. 아버님은 늘 내 편이었고 남편은 때때로 남의 편이었기에 남편이 한없이 미울 때도 시아버님 때문에 헤어지지는 못하겠다 싶을 정도였다. 살아생전 "내 걱정은 하지마라"시며 늘 마음 편하게 해주시고 93세까지 건강을 잘 유지하셨다. 내가 한 것이라곤 아버님께 안부를 여쭈고 때때로 국이나 반찬을 해드린 것 밖에 없지만 시아버님은 나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셨다. 

 



산청호국원 길목에 들어서니 배롱나무들이 붉은 꽃 앞다투어 흔들며 우리를 맞이한다. 입구에서 제복을 입으신 분이 국가 인사 의전 하듯 하신다. 호국 영령에 대한 예우일 것이다. 아버님도 참전 용사이니 충분히 예우를 받으실 자격이 된다. 지리산 자락 아래 현충탑과 시설물들이 엄숙하고 조화롭다. 구역별 묘역은 작은 아파트 같다. 납골당마다 구역, 동, 층수와 호실로 된 숫자가 붙어 있다. 아버님 집은 211989로 2-1구역 19동 6층 9호이다. 택배는 받을 수 없는 주소이다.      



아버님은 청자에, 어머님은 백자에 모시어 엄숙하고 간소한 안장식이다. 식을 마치고 두 분의 유골함을 만지며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설명하시는 분이 가족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안내를 한다. 

“고인을 이곳에 60년간 모시며 연장 여부는 60년 후 자손들과 의논하여 결정합니다”

‘60년 뒤라고? 그때는 우리가 없겠는데?’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 중 남을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 그 결정은 니가 해야겠다~”

남편도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아들의 등을 도닥이며 말한다. 

“네~그렇게 해야죠” 

지금은 씩씩하게 대답하지만, 그때는 아들도 86세 노인이다. 숫자가 우리의 실존을 선명하게 밝혀 준다. 60년 정도면 세대가 완전히 교체될 시간이다. 젊었을 때는 지금의 나이를 상상할 수 없었다. 60년 뒤 역시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다. 지금 이렇게 빨리 50대가 되었듯이 아마 그 긴 세월도 금방 다가올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호국원 근처 남사예담촌에 들렀다. 한국 아름다운 마을 1호답게 언제 와도 정겹다. 60년 뒤에 함께 할 수 없는 가족이 함께 최씨 고가 돌담길을 걷는다. 그때는 아들이 손주들과 이곳을 걸으며 나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다시 오지 못할 시간이다. 지난겨울 죽은 것처럼 보였던 담쟁이가 손바닥보다 큰 잎을 만들어 돌담을 덮고 있다.  60년 뒤에도 담쟁이는 줄기를 뻗어 새잎을 만들 것이고, 사람들은 세대를 이어 걸을 것이다. 고즈넉한 최씨 고택을 지키는 향나무는 혼령들이 만든 거대한 촛불 같다. 텅 빈 마당 위에 초가을 햇살이 그림을 그린다.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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