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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Jun 15. 2021

내 안의 심초석

-  생명의 근원을 찾아서


코로나와 흐린 날씨 탓에 인적 끊긴 도시           

언덕마다 핀 산수유가 봄소식 띄웁니다.     

늦은 오후 경주 반월성 옆 개울 산책길 걷습니다.      

황토 언덕과 갈색 나무가 물속 흐린 하늘색 만나      

연초록 들판과 나무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투명하게 비친 반월성 언덕의 뒤엉킨 겨울나무들      

입체감도 원근도 명암도 없이 모노톤입니다.         

경주에 또 반합니다.                               

“이렇게 구름이 드라마틱한 날 폐사지 가봐야 하는데      

하늘이 넓은 황룡사지가 딱 좋은데...”     

동행한 언니 구름 짙어지는 하늘 보며 말합니다.      

어둡기 전에 가려던 마음 순식간에 증발하고      

“아- 좋아요~ 당연히 가봐야지요”      

특별한 찬스 놓칠 수 없습니다.      


주차장에 들어선 순간 허허벌판이 낯섭니다.      

빈터를 바라보며 여인이 홀로 서성댑니다.      

혼자 놀이 그녀가 ‘시’를 건져가면 좋겠습니다.      


입구 안내문이 터의 역사를 알려 줍니다.      

신라인 그들의 땅이 바로 불국토임을 알려준 ‘황룡사’     

선덕여왕이 절 가운데 축조한 ‘황룡사 9층 목탑’은      

주변국 제압이라는 불가능한 꿈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고려 때 몽골군 침입으로 모두 불타 빈터만 남았지만      

기둥 잃은 60여 개의 초석들 단단하고 의연합니다.      

그들의 울림이 9층 목탑보다 높습니다.      


들판 사이로 난 흙길을 맨발로 걷습니다.      

허공을 받치고 있는 돌들을 하나씩 밟아 봅니다.      

천년이 넘는 기억을 품고 있는 주춧돌      

갈라지고 깨어진 돌의 통증       

짙고 옅은 꽃들로 만개했습니다.      


영광과 굴욕의 역사 먼지처럼 사라지고      

바람, 햇볕, 빗줄기에 다져진 돌덩이      

하늘과 땅이 고요히 만나 묵언 수행합니다.      

강렬한 침묵의 언어가 대기에 가득합니다.      

발끝으로 전해 오는 냉기와 온기가 저릿합니다.      


9층 목탑 자리 한가운데 섰습니다.      

사방 탁 트인 공간 먼 산으로 애워싸였습니다.      

우주의 한 복판에 선 느낌입니다.     

내가 선 땅 어디서든 중앙이겠지만        

‘천상천하 유아독존’ 힘이 납니다.      


터의 가운데 아주 큰 돌 하나 있습니다.      

탑의 중심 기둥을 받치던 돌 ‘심초석’이라고 합니다.     

타원형으로 누운 거대한 돌 아래엔      

3,00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심초석’의 갈라진 틈 물길은 선조의 지혜입니다.      

심초석에 세운 기둥의 위용 상상해봅니다.      


가까이 다가갑니다.          

막음 돌 사이로 흐르는 핏줄 같은 것이 있습니다.      

심초석으로부터 올라온 붉은 선이 막음 돌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순간 ‘거대한 심장’의 환영이 스쳐갑니다.      

돌 속 철분의 부식 현상이라 짐작되지만        

살아 숨 쉬는 심장 같습니다.     


가만히 손대어 보니 제 심장 같습니다.     

몸속에서 펄펄 뛰고 있는 나의 심장      

제 몸 한가운데서 뜨겁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심장 그림이 겹쳐집니다.      

구름 가득한 하늘 배경 앞 자신의 두 모습      

남편 디에고와의 관계에서 고통받는 심장 안은 왼쪽과     

건강한 심장을 지닌 오른쪽 모습이 대조적입니다.      


인물은 동맥으로 연결되어 있고 손을 잡고 있습니다.                

절단된 심장의 핏줄에서 흐르는 피가      

흰 드레스 위에 붉은 꽃으로 피었습니다.      

쓰라린 심장 안고 있지만 자세와 표정 의연합니다.      

고통 드러내었기에 더욱 당당합니다.                

아픈의 심장도 건강한 심장도 그녀 자신입니다.      

                    

자기 생명의 근원을 남편 디에고라고 끊임없이 얘기하지만      

그녀의 ‘심초석’은 디에고가 아니고 바로 그녀 자신입니다.     

헤어스타일, 짙은 눈썹, 표정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영혼은 강인합니다.      

우주의 중심은 그녀 자신이었습니다.      


저 역시 상처 받은 심장 안고 살아갑니다.     

건강한 심장으로 살았던 날들에 수혈받으며         

내 깊은 '심초석' 매일 맑은 피 생성하고 있습니다.       

아픈 심장의 핏자국도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모두 사랑해야 할 나 자신입니다.      


심장은 뇌로 조정할 수 없는 몸의 근원입니다.      

욕심과 무지로 요동치거나   

두려움으로 긴장하고 쪼그라들 때       

‘심초석’ 떠올려 기둥 세우겠습니다.       


내 생명의 중심은 밖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은 밖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 깊은 곳에서 매일 새롭게 피어납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빛납니다.           

'심초석’ 아래 숨겨둔 보석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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