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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Jun 15. 2021

국수 한 그릇

- 일상 속 잔칫날

“미경~~ 보고 싶은데 시간 되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H언니 전화가 반갑습니다. 

“오~ 언니 잘 지내셨어요? 당연히 시간을 내야죠~‘ 

”맛있는 점심 한 그릇 사주려고 “

”무슨 말씀을요 제가 사드려야죠~! “ 


아침 반찬이 문득 생각납니다. 

”마침 부추 나물 있으니 우리 집에서 국수 먹어요~“ 

얼떨결에 나온 말인데 기분이 좋아집니다. 


언니가 또 와코루 팬티와 먹거리를 들고 왔습니다. 

집 앞 숲길까지 손을 꼭 잡고 걷습니다.

말없이 잡은 손에 담긴 말 서로 잘 압니다. 

숲 속을 걸을 때도 언니는 묵주를 돌리십니다. 

아마 저를 축복하는 기도 하고 계실 겁니다. 




오래전 둘째 아이의 첫 소변을 받아서

새벽마다 병원과 성당에 달려간 언니 

새벽 기도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아들 멋진 청년으로 자라 장가도 갔습니다. 

하나님도 언니의 정성에 감동하셨을 겁니다. 

늘 자신의 교만과 욕심을 탓하지만 

언니 삶의 모습 하나님 보시기에 충분히 좋을 겁니다. 


예전에 언니 집에 들렀을 때 

언니의 새벽 기도 명단 노트에 

우리 가족이 언니 가족과 함께 적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몇 년 전 남편과 큰 다툼이 있었던 며칠 뒤 

”미경~ 잘 있나? 호수 걷고 국수 한 그릇 먹을까? “

우리 동네 ’ 국수 한 그릇‘에서 만나 국수를 먹다가 

울컥 눈물이 나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제주도 이시돌 피정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날의 국수는 눈물의 국수였습니다. 

오늘 국수는 기쁨의 국수입니다. 


신기한 것은 신상에 어떤 변화가 생길 때나 

특별히 지치고 힘겨울 때면 

늘 언니가 먼저 안부를 물어옵니다. 

그럴 때는 잘 먹어야 한다며 ’ 도가니탕‘을 사주셨습니다. 




H언니에게 받은 선물도 참 많습니다. 

첫아들을 출산 때 친구들은 대부분 아기 옷을 사 왔는데 

언니는 산모가 잘 먹어야 한다며 소고기 두근 손에 쥐고 왔습니다. 


남편과 해외여행을 자주 가던 언니에게 

캡슐로 된 에센스를 처음 받아 보았습니다. 

서랍 속 와코루 팬티는 거의 다 언니에게 받은 겁니다. 

자신은 만 원짜리 바지 입고 만족하면서도 

선물은 늘 고급 취향입니다. 


제가 냉담하고 있을 때 조용히 건네주신 성경 책

저의 첫 개인전 그림을 아주 마음에 들어하시며 

가격을 묻지도 않고 거금을 주셨습니다. 


선물 중 으뜸은 낡은 기도서와 감동 ’비빔밥‘입니다.

오래된 언니의 기도서는 얼마간 사용하다가 

너무 귀한 것이라 조심스럽게 돌려드렸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불러 차려 주신 정성스런 

버섯 비빔밥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세월 H언니에게 받은 사랑 분에 넘칩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의 내리사랑 한결같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내리사랑일까요?

언니에게 언젠간 꼭 집에 초대해 

맛있는 것 해 드리겠다는 다짐마저 까마득합니다.  


1시 ’ 북 토크‘에 함께 가기로 한 K언니도 초대했습니다. 

H언니와도 함께 근무하여 서로 잘 압니다. 

주부 경력 30년 안팎의 여인들 

말하지 않아도 손발이 척척 맞습니다.


지리산 푸성귀로 만든 목사님 표 겉절이, 부추 나물 

고성에서 가져와서 손질까지 해준 남편 표 머위나물

진주에서 보내 주신 엄마표 얼갈이 열무 맛 김치 

자연드림 도토리묵 위에 얹은 밀양 언니 표 돌나물 

도자기 그릇에 예쁘게 담습니다. 


5월 들판이 식탁 위에 가득합니다. 

고마운 분들의 손을 거쳐 밥상까지 온 귀한 음식을 앞에 두고 

언니가 두 손 모아 감사 기도합니다.

받은 사랑 조금이라도 돌려 드리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 


동그랗게 말린 국수 면발 위에 

양파, 계란, 부추 고명 얹고 젓가락을 든 순간 

기쁨이 국수 가닥을 타고 후루룩 거립니다.

아끼고 사랑하고 보살피기를 잘하는 언니들 

우리가 여자인 것이 좋습니다. 


무거운 배를 안고 가벼운 걸음으로 

우리 동네 꼬마 평화 도서관 ’ 청보리‘에 갔습니다. 

나이 지긋한 두 여인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 여성은 보물 창고입니다.‘ 

작가 변택주 님이 전하는 법정 스님의 말씀입니다. 

작가님은 스님과의 오랜 인연으로 책을 여러 권 내셨습니다. 

법정 스님은 여성들을 매우 귀하게 여겼고 

어머니들이 요청하는 강의에는 꼭 갔다고 합니다. 


법정 스님은 자신도 어머니에게 나왔고 

모든 여성은 어머니이거나 어머니가 될 몸이니 

보물로 아끼고 존중해야 한다는 말씀을 늘 하셨다고 합니다. 

가슴이 힘 있게 펴지는 기분입니다. 


'배속에 마음이 있다'고 스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국수 한 그릇, 좋은 글귀 한 줄로도 

마음이 가득 차는 이유 같습니다.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풍요로움은 스스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일상에 작은 기쁨 넘쳐납니다. 


국수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고마운 사람을 초대하여 

’국수 한 그릇‘ 만들어 드리지 않으시렵니까?

당신은 누구를 초대하고 싶으신가요?


우리의 일상이 잔칫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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