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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Jun 15. 2021

나는 어떤 나무인가?

- 나무처럼 춤추고 단단해 지기

당신의 기억 속에 어떤 나무가 있습니까?  

세한도의 소나무 같이 외롭지만 당당한 나무

‘코로’의 그림처럼 평화롭고 풍성한 나무 

‘고흐’의 그림처럼 격렬하고 열정적인 나무 

누구에게나 나무가 특별한 이유는 

우리의 모습을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붉은 땅 아프리카 나무가 생각납니다. 

황량한 나미비아 평야를 덜컹거리며 달릴 때 

지평선을 배경으로 띄엄띄엄 홀로 선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무성한 잎과 빼어난 조형미에 놀랐습니다.

하늘 향한 가지는 자유를 외치는 듯 기도하는 듯했습니다. 


제 마음속 나무가 휘청거리고 있었던 때였기에 

마른땅에서도 당당히 선 나무가 저를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나미비아 사막 ‘데드 플라이’ 나무들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마른 호수에 서고 누운 나무들이 기이하고 경이로웠습니다. 

나무는 거대한 뼈가 되었고 죽음으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달리 그림 같은 초현실적 공간에 멍하니 앉았습니다. 

부활과 상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며 빛을 발합니다. 

저들의 아픈 이야기가 슬프고 아름다웠습니다. 




"내가 널 찍어도 되겠니? 널 찍을 자격이 있니?" 

작가 김중만은 중랑천 둑방길 수양버들에게 말했습니다. 

폐기물과 흙먼지로 뒤덮여 죽어가는 나무에게 

4년간 묻고 승낙받아 10년간 사진을 찍습니다. 


갈라지고 부러진 채 버티고 있는 나무에 자신을 보았다고 합니다. 

나무를 향한 카메라 앵글은 자신과의 대화였습니다. 

서서히 아픈 나무는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가 되어 살아난 그들 이야기에 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쿠바의 나무는 하늘에 닿을 듯 높았습니다. 

가난과 압제에도 춤추고 노래한 쿠바인들 마냥 

단단한 수피와 무성한 잎을 만들며 자유롭습니다. 


혁명군의 활동지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에도 

쿠바 영웅들의 묘지 산타 이피 헤니아에도 

혁명의 시발점 몬카다 병영 학교 앞에도 

팔마 나무는 거대한 솟대가 되어 하늘과 닿아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공 쿠바인을 닮아 어디서나 당당합니다.   




세상 어디든 나무는 

마른땅에서도 쓰레기 더미에서도 아픈 땅에서도 

질긴 생명 부여잡고 최선을 다해 살아냅니다. 

때론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등이 휘고 팔이 굽지만  

새들은 굽은 가지를 더 좋아합니다.


서로 사랑하여 한 몸이 된 연리지 나무,

휘감겨 갈등하는 칡과 등나무도 있지만 

나무는 근원적으로 홀로 자랍니다.

홀로 서는 존재는 고독하지만 의연합니다. 

숲을 꿈꾸어도 당당하고 여유롭습니다. 


집 앞 평범한 나무 한그루를 봅니다.   

나무의 사유는 뿌리가 되어 뻗어갑니다. 

마른 몸은 빗물 적시고 젖은 몸은 햇살로 말리며 

매일 새 수피 만들고 나이테 그려갑니다. 

투명한 그림자 바라보며 고요히 섰습니다.        


제 안의 나무를 봅니다. 

아직도 바람에 쉽게 흔들리고 

자주 수피가 갈라지지만

지금 여기 존재합니다. 

생명의 깊은 뿌리가 저를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살아서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노래했습니다.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현실에 맞서 행동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지만 

시인은 나무의 주체성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무처럼 스스로 춤추고 스스로 잠잠해져야 

세상도 함께 춤추고 잠잠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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