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소설
Small things like these 이 처럼 사소한 것들... 책 선물을 받고 표지를 보았을 때 드는 느낌은 왠지 황폐함 쓸쓸함 그 자체였다. 소설치고는 꽤 얇은 두께도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책 커버를 열었을 때 눈에 띄인 이 문구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일랜드 공화국은 모든 아일랜드 남성과 여성으로부터 충성을 받을 권리가 있고 이에 이를 요구한다. 공화국은 모든 국민에게 종교적, 시민적 자유, 평등한 권리와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며, 국가 전체와 모든 부문의 행복과 번영을 추구하고 모든 아동을 똑같이 소중히 여기겠다는 결의를 천명한다. "
'아일랜드 공화국 선언문' (1916)에서 발췌
이처럼 사소한 것들
아일랜드의 수도는 더블린, 더블린하면 세계적 문학 거장들의 고향으로 연상된다. 북아일랜드하면 벨파스트, 벨파스트하면 청년시절에 읽었던 '북아일랜드 그 원한의 역사'란 책이 떠오른다. 영화로도 제작 상영되었다. 이처럼 아일랜드하면 복잡한 민족사가 얽혀있다. 아일랜드는 영국 서쪽에 자리잡은 섬나라이고 그 섬의 북쪽은 북아일랜드라고 해서 영국령이다. 마지못해 영어를 사용하긴해도 아일랜드어가 국어다. 게다가 아일랜드 원주민은 켈트족이고 종교는 가톨릭이다. 영국인들은 아일랜드를 자신들의 이웃, 나아가 같이 살고 싶은 민족으로 여겼다. 물론 아일랜드 인들은 800여 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독립을 쟁취하려고 했고 결국은 둘로 나뉘어 졌다. 800여 년의 영국 식민통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는 앵글로색슨족의 영국으로부터 자기 문화를 지키며 민족적 자긍심을 강하게 유지시켜온 나라로 유명하다.
굳이 서두에 아일랜드의 역사를 끄집어내는 이유는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의 분위기를 이해하려면 소설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985년이 시간적 배경인데 왜 사회적 배경이 어두운지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이 책은 '역대 부커상 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카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자칫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이 작품은 현재 아일랜드 배우 킬리언 머피가 직접 주연과 제작을 맡아 영화로 제작 중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주인공 펄롱은 아내 아일린과 딸 다섯과 함께 석탄 배달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가장이다. 시간적 배경은 1985년, 아일랜드의 젊은이들이 런던, 보스턴, 뉴욕 등으로 이민을 떠나고 있었던 때였다.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연합주의자들과 아일랜드 더블린과의 갈등으로 경제 상황은 날로 피폐해지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제대로된 먹거리 땔거리가 없어서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럴수록 펄롱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않고 딸들이 잘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 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 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그러던 어느 날, 강 건너 언덕위에 있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직업 여학교 세탁소에 석탄배달을 하러 갔다가 처참한 상태로 혹사당하고 있는 듯한 자신의 딸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 중 한 아이가 아기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자신의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싶다고 자기들을 여기서 나가게 도와달라고 펄롱에게 애원을 한다. 그날 이후로 펄롱은 고민에 빠진다.
"어쨋든 간에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딸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잖아?"
"우리 딸 들? 이 얘기가 우리 딸들하고 무슨 상관이야?"
펄롱이 물었다.
"아무 상관 없지. 우리한테 무슨 책임이 있어?"
"그게,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말을 듣다 보니 잘 모르겠네."
"이런 생각 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아일린이 말했다.
"생각할수록 울적해지기만 한다고."
아일린은 초조한 듯 잠옷의 자개 단추를 만지작 거렸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이처럼 사소한 것들 p.55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 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p.11
소설의 시작은 이렇게 된다. 임신하고 물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를 암시하고자 했고 가능하다면 그런 뉘앙스가 번역문에도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부탁을 받고 이렇게 번역했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은 아니지만, 1996년에 아일랜드의 마지막 막달레나 세탁소가 문을 닫고 난 후 세상에 공개된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해서 쓴 것이다.
동네사람들은 높은 담 안에서 저질러지는 세탁소의 실체에 대해서 짐작은 하면서도 모른척한다. 수녀원으로 대표되는 그 세상은 너무 크고. 그 안의 어떤 존재들은 너무 작은 존재이다. 동네사람들이 해야할 일들은 누군가 먼저 하지 못한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꼭 했었어야 하는 일들이었다.
1996년에서야 문을 닫은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은폐, 감금, 강제노역을 당한 여성과 아이가 얼마나 많은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만명에서 3만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책을 덮는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해야되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제 때에 하지 못해 구원해주지 못하는
주변의 안타까운 존재들이 없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Small things like these make a difference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큰 변화를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