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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정 Aug 20. 2024

비양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어린 왕자> 속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는 그 동화 속에 나오는 모자같이 생긴 섬을 바라본다. 제주의 바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협재 바다는 곱고 깨끗한 모래사장과 초록빛 바다, 해변에서 바라보면 마치 중절모처럼 생긴 눈앞에 보이는 섬 때문에 언제나 환상적이다.    

  

  ‘저 섬에 가보고 싶다.’ 오래전 처음 협재 해변에서 비양도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수영을 잘한다면 헤엄을 쳐서 갈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 보이는 섬이다.


  어느 가을이 깊은 날 한림항에서 배를 탔다. 채 20분도 되지 않아 비양도에 닿았다. 배를 탄 사람도 많지 않았지만 섬에도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고 아주 조용했다. 먼저 114.7m의 비양봉에 올랐다. 비양봉 올라가는 길에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를 따라왔다. 마치 길을 안내하듯 한참을 앞서기도 하고 따라오더니 어느새 없어졌다. 비양봉 올라가는 계단에서 몇 번을 멈추었다. 계단에 서서 바람에 흐드러진 억새와 반짝이는 바다를 보고 또 보았다. 비양 오름에는 나무는 많지 않고 온통 억새밭이었다. 제주의 가을은 억새로 유명하다. 어디서나 따스한 가을 햇살을 품고 흩날리는 억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평지에서 보는 억새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산등성이 한 면이 거의 다 반짝이는 은빛 물결인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딴 세상에 온 것과 같은 고요함과 따뜻함을 느꼈다.

 

  협재 해변에서 중절모 모양으로 가운데가 움푹 파이게 보였던 곳은 분화구였다. 하얀 등대가 있는 비양봉 가는 길에 염소 울음소리를 들었다. 멀리 염소들이 분화구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등대 앞 언덕에서 저 멀리 한라산과 해녀들이 물질하는 바다를 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보말죽 파는 집이 있어 들어갔더니 아까 우리를 안내했던 강아지가 그곳에 있었다. 사람을 잘 따르는 강아지는 배가 들어오고 관광객이 오면 그렇게 안내를 잘한다고 주인이 이야기해 주었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바위에 ‘비양도 천년기념비’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더니 언제 왔는지 강아지가 내 옆에 서서 같이 사진에 찍혔다. 15년 전 일이다.


  오래전에 비양도에서 보았던 그 아름다운 풍경을 또 보고 싶어 비양도 가는 배를 탔다. 배에는 관광객이 많았다. 섬도 조금 바뀌어져 있었다. 식당도 더 생기고 뭘 만들려는지 크게 공사하는 곳도 있었다. 비양봉 올라가는 길에 사람들도 몇 명이나 만났다. 우리 앞서 걸어가는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강아지와 같이 올라가고 있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여행지까지 데리고 오는 젊은이들이 많아 그런 줄 알았다. 마을은 전보다 조금 바뀌어져 있었으나 계단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여전히 가슴 설레게 평화로웠다. 호수처럼 고요한 푸른 바다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는 풍경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보말죽 파는 가게에서 우리 앞서 걸어가던 젊은 부부를 만났다. 강아지와 같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집에서 데리고 온 강아지가 아니고 식당 집 강아지라고 했다. 배에서 내려서부터 계속 자기들을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오래전 나와 같이 사진을 찍었던 그 강아지는 아니다. 그 강아지의 새끼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시 한림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나갔더니 강아지가 어느새 따라와 배 타는 앞마당에 엎드려 있었다. 떠나는 사람들을 전송하기 위해서. 강아지는 배가 섬에서 떠날 때까지 그곳에 앉아 있다 돌아갔다.  

    

  비양도(飛揚島)는 고려 시대에 산이 바다에서 솟아 섬이 되었다고 한다. 화산이 폭발하여 형성된 것이다. 날아온 섬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천 년 전, 한림에 살던 한 아주머니가 굉음에 놀라 집 밖으로 나갔더니 중국 쪽에서 한 봉우리가 날아오는데 마을과 부딪힐 것 같아 멈추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지금의 자리에 떨어져 섬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비양도는 섬 주위를 한 바퀴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크지 않은 섬이다. 섬에는 자동차 종류는 없고 자전거만 탈 수 있는데 그래서 더욱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소음도, 공해도 없고 깨끗한 바닷물과 풍부한 해산물이 있는 인심 좋은 사람들이 사는 섬이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한 때 떠돌던 협재와 비양도를 잇는 케이블카 설치 사업 계획이 취소된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비양도는 배에서 내려서부터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화를 주는 신비의 섬이다. 그냥 섬 주위를 천천히 걸어도, 언덕에 올라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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