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른 김장하'를 보고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장 28절)
복음 중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사랑은 사람을 존귀하게 하는 힘이 있다. 성경 말씀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 어느 민족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남자이든 여자이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신분에 따라, 또 여자이냐 남자이냐에 따라 차별이 심했던 조선 시대에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 많은 것이 변했다. 임금님을 치료하던 의사 선교사는 가장 밑바닥 신분이었던 백정까지 치료를 했고, 왕족과 그의 마부가 교회 안에서는 형님 동생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기독교의 사상이 사람을 변화시켰고, 이 사회를 변화시켰다.
이번 주에 TV에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어른 김장하'는 몇 년 전에 만든 영화인데 요즘 다시 관심을 받아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영화를 보고 너무나 감동을 받아 며칠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생각났다. 그런 어른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고, 기뻤다. 그와 내 나이가 8살 차이인데 그가 그렇게 엄청난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내 아이 잘 키우고 나 자신 만을 위해 살아온 듯하여 부끄럽기도 했다. 그리고 계속 드는 생각은 어떻게 그는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의 사상은 평등을 추구하고, 차별에 반대하고, 인권을 옹호하고, 보통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을 지탱한다는 사상이다. 그가 기독교인이라면 조금은 이해가 됐을 것이다. 기독교인 중에는 특히 선교사 중에는 그런 사람이 드물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러면 그의 사상은 어디서 왔을까?
그가 세운 명신고등학교의 창학정신은 '명덕신민明德新民'이며 그의 방에는 '사무사思無邪'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다. 이 어휘들은 유교의 사상이다. 명덕신민은 서경에서 나온 사상이다. 명덕은 올바른 나를 찾아, 신민은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유학자들은 자신이 먼저 인격자가 될 것을 강조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뿐 아니라 백성 또한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원칙으로 삼는다. 사무사는 논어에 나온다. 시경 삼백 편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무사'라고 할 수 있다. 시경의 노송경편에 나오는 말을 공자가 인용한 것이다. 생각이 어긋남이 없고 마음에 사특함이 없다는 뜻이다. 즉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것이다. 김장하 선생은 유교의 영향권 안에 있은 듯하다. 유교가 이 나라를 쇠하게 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렇게 그는 유교의 정신을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며 산 듯하다. 그의 사상만큼 중요한 것은 그의 태도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태도, 정말 사특함이 없다. 진주에서 일어났던 형평운동에도 헌신한 것을 보면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큰 어른이다. 그래서 10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 공부를 계속하게 한 듯하다.
김장하 선생은 돈을 많이 번 부자이다.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많을 때는 하루 800재의 한약을 지어, 그 오래전에 한 달 1억의 수입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한약방에는 직원이 20명쯤 있었는데 다른 한약방보다 2배 이상 월급을 주었고, 그의 한약방이 있는 상가 건물에 세든 다른 업소에게는 20년 넘게 세를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호의호식하지 않고 번 돈의 대부분을 남들을 위해, 사회 발전을 위해 썼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항상 뒤쪽에 서 계시는 분이다. 김장하 선생의 얼굴과 눈이 맑아 더욱 좋았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사상을 실천하며 사신 어른이 우리 시대에 있었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늦었지만 나 자신도 그를 닮아가려고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