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by 권민정


재작년 봄에 강원도에 가족여행을 갔다가 산불을 겪었다. 우리 가족이 묵은 리조트는 강원도 고성군, 설악산 울산바위가 가까이 보이는 산속에 있었다. 단독 별채 건물들이 죽 이어져 있는 리조트는 코로나 시대에 가족끼리 지내기 아주 좋은 곳이었다. 바람이 무척 부는 날씨였다. “아, 이런 날에 불이 나면 진짜 무섭겠다.” 낮에 그런 말도 했던 것 같다.


우리 옆 동에서는 테라스에서 바비큐를 하는지 냄새를 피우고 있었고, 우리는 바람이 심해서 밖에서 고기 굽기에는 적당하지 않으니 바비큐는 내일 하자며 집 안에서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그때였다. 방송이 나왔다. 산불이 났으나 많이 떨어진 곳이고 바람 방향이 반대쪽이니 동요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밥을 먹다 놀라서 모두 밖으로 튀어 나갔다. 사방을 둘러보니 호수 건너편 산이 벌겋게 불에 타고 있었다.


동요하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 옆 동에서 바비큐를 하던 사람들은 어느 틈에 짐을 다 싸서 가버렸다. 의견이 분분했다. 불이 난 곳이 리조트와 4.5Km 떨어진 곳이긴 해도 바람방향이 바뀐다면 몇 시간 안에 이쪽으로 올 수 있으니 우리도 짐을 싸서 돌아가자는 의견, 좀 더 추이를 지켜보자는 의견들이었다. TV를 켰더니 벌써 고성산불 뉴스가 속보로 뜨고 있었다. 1년 전에도 고성에서 큰 산불이 나서 피해가 컸던 탓에 산림청에서 진화에 온 힘을 기울이는 듯했다. 초속 20m의 강풍으로 토성면 도원리에서 발생한 불이 인근 학야리로 확산되고 있었다. 바람 방향은 우리 쪽과 확실히 반대방향이었다.


리조트 본부에서는 만약 바람 방향이 바뀌어서 조금이라도 위험하다면 모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개인적으로 산길을 빠져나가는 것이 더 위험하다, 바람 방향이 바뀔 시 타고 나갈 대형버스, 다른 안전한 숙박 장소 등을 다 준비해 놓았고 직원이 산불현장에 나가 있고 본부와 실시간 모니터 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계속 내 보냈다. 세월호 트라우마가 있어 본부의 말을 믿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더 숙박할 계획이었고, 벼르고 별러 온 첫날이라 되돌아가기에는 미련이 많았다.


리조트 관리본부에서는 안심하라고 했지만 가슴은 두근두근 거렸다. 바람 소리는 공포를 더 키웠다. 일단 짐은 싸놓고 기다리기로 했다. 짐을 싸면서 손이 떨렸다. 이번 여행에 같이 온 가족은 총 12명이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와 유치원에 다니는 2명의 손녀, 손자 1명, 총 4명의 아이들도 불에 놀란 모양이었다. 각자 가방을 싸라고 했더니 순식간에 자기들 가방을 싸서 어깨에 메고 있었다. 군대를 갔다 온 세 명의 남자들은 자기들이 밤에 중계방송을 들으며 불침번을 서겠으니 다른 식구들은 자라고 했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고 밤을 조마조마하게 지새웠다.


다음날 아침 다행히 강풍주의보가 해제되고 투입된 39대의 소방헬기 덕분에 산불이 진화되었다. 소방대원들은 밤새 불과 사투를 벌여 민가로 불이 번지지 않도록 한 것 같았다. 산림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인명이나 가축의 피해는 없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마조마하게 밤을 보낸 우리 식구는 안도의 숨을 쉬며 싸놓았던 짐을 다시 풀었다. 그러다가 잃었던 웃음을 빵 터트렸다. 초등학생은 책을, 유치원생 손녀는 낮에 딸기농장에 가서 얻어온 딸기잼을, 또 한 명은 슬라임 장난감을, 제일 어린 손자는 축구공을 가방 속에 넣은 것이었다. 아마 가장 귀한 것을 나름 챙겨 넣은 것이다.


산불이 해마다 더 심해진다. 예전에 비해 잦아진 대형 산불 소식을 외신에서 듣곤 한다. 2년 전 호주에서의 산불은 얼마나 가슴을 아프게 했던가. “제발 저 좀 살려 주세요” 숲은 불타고 있었다. 캥거루가 이리저리 불길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지옥 같은 불길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어린 캥거루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공개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캥거루는 살아났을까? 화상을 입었지만 구조된 한 어린 코알라가 겁에 질린 얼굴로 두 손을 소방대원 어깨를 꽉 붙들고 안겨 있는 사진도 보았다. 6개월 동안, 우리나라 면적보다 넓은 지역이 불에 탔다. 33명의 인명피해. 1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희생됐다. 코알라 1만 마리가 사망한 것 같다는 보도도 보았다.


산불은 대부분 인재라고 한다. 처음 시작은 방화든, 실화든 사람에 의해 나는 것이 많다. 그러나 이렇게 자주, 대형으로 번지는 것은 그 근본 원인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발화, 호주산불 역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며 폭염과 가뭄으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심화할수록 고온건조기후를 강화하여 산불을 장기화시켰다는 것이다. 지구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치를 넘어버려 이런 불행한 일들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라는 것이다.


올해 여름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큰 산불이 났다. 산에서 시작해 강풍을 타고 매우 빠른 속도로 마을을 휩쓸며 해안까지 다다른 불길 때문에 주민들의 피해가 엄청났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피해가 큰 산불이라고 한다. 캐나다에서는 올해 봄에 산불이 나서 아직까지 진행 중이다. 캐나다 역사상 가장 심각한 산불이라고 하는 이 산불 역시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 및 열돔 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가을이 되어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 살던 수많은 생명의 피해를 짐작할 수도 없다. TV에서 불을 끄기 위해 벌이는 소방대원들의 사투를 보며 산불이 우리 쪽으로 올까 봐 두려워하며 밤을 보냈던 그날처럼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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