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민정 Oct 07. 2023

백제의 미소

           

  “엄마,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왜?”

  “엄마 얼굴이 좀 화난 것 같아 보여서요.”


  생각 없이 소파에 앉아있는 나에게 큰 딸이 한 말이다. 특별히 인상을 쓴 것도, 안 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 표정이 그렇게 보인 모양이다.  

     

  미국에서 5년 동안 살다 귀국한 딸이 외출했다 돌아와서는 “오늘 지하철에서 본 우리나라 사람들 얼굴이 좀 무서웠어요.” 한다. 웃는 사람은 거의 없고 무뚝뚝하고 화가 난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작년, 딸네 집에 갔을 때 일이 생각났다. 운동하느라 집을 나서면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 미소를 띠고 “하이” 하고 인사를 하여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할 수 없이 같이 인사를 하다 보니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나도 미소를 띠게 되었다. 우리는 익숙해서 느끼지 못하지만 오랜만에 본 우리 얼굴이 딸아이에게는 화나게 보인 것 같다.


  딸의 말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 사람의 얼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친한 사람끼리는 그렇지 않지만 대체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무뚝뚝하고 미소가 없다. 전투적이기까지 하다.


  ‘미소’ 하면 내게는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백제의 미소다. 저 유명한 ‘모나리자’의 미소 보다 더 보기 좋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인의 얼굴은 둥글고 복스러운 얼굴에 후덕한 웃음을 띠고 있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실제 우리 얼굴은 눈이 작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전체적으로 좀 강한 인상을 주는 얼굴인데 왜 이런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불상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외국 유명 박물관을 가면 꼭 아시아관을 관람한다. 한국관이 따로 있는 곳도 있고 여러 나라 것들이 섞여 있는 곳도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불상이 많다는 점이다. 거기서 여러 불상들을 보다 보면 중국이나 인도 등 다른 나라 것과 우리 것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구별이 된다. 우리 부처님상은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고 인자하게 보인다. 근엄함이 지나쳐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외국 것과는 다르다. 숭상하는 절대자의 조각이지만 거기에는 민족의 혼과 표정이 표현된 것으로 여겨졌다.


  백제의 미소로 대표되는 서산 마애삼존불의 얼굴을 보며 저런 얼굴이 우리 조상의 얼굴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운데 서 있는 부처님의 얼굴모습은 입가에는 익살스럽게 보이는 커다란 미소를 띠고 눈에는 순박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 좌우의 두 보살 역시 참으로 쾌활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있는 따뜻한 얼굴, 순하고 어진 얼굴이었다. 가난하고, 부족한 것 많지만 욕심부리지 않고 살던 우리나라 사람의 얼굴이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오천 년 역사에서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롭다는 21세기를 사는 우리 한국인의 얼굴은 왜 미소를 잃었을까? 너무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는 삶의 방식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많이 소유할수록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고 그래서 만족이란 없다. 하나를 가지면 잠시의 만족은 있으나 그 만족은 결코 오래가지 않으며 곧 두 개를 원하게 된다. 그러니 소유에 집착하는 삶의 태도를 버리고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야 행복하다.


  그러나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셋방 사는 사람이 단칸방이라도 내 집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고, 그것을 소유했을 때는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행복은 없어지고 더 큰집, 더 좋은 동네를 욕망하듯이 이 세상에 속한 거의 모든 것은 하나를 가지면 곧 두 개를 욕망하게 된다. 어느새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이 되면서 소유에 집착하고 있는 나를 본다. 남과 경쟁하며 더 가지려고, 더 이루려고, 더 높아지려고 하는 어리석은 우리들이다.


  아시아의 동쪽 끝, 강대국 사이에 끼인 작은 나라지만 우리나라를 불가능한 꿈을 이룬, 기적을 이룬 나라로 인식하는 외국인이 많아졌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느라 우울해하고 기쁨을 잃은 나라가 된 것 같다. 만족할 줄을 모르는 한국인들을 안타깝게 여긴다.  

    

  “엄마,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엄마 얼굴이 행복해 보여요.”

  딸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 그런 표정의 얼굴이 될 수 있는 날이 올까?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온 딸아이에게서 “오늘 지하철에서 본 우리나라 사람들 미소가 참 보기 좋았어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올까?       

              

작가의 이전글 세로의 가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