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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정 Nov 24. 2023

맥문동

                  

  “진도(珍島)의 파는 겨울에 자랍니다.”


  잿빛으로 변해 버린 겨울 어느 날, 신도림역 선전 간판에서 이 문장을 보고 나는 그해 겨울 내내 진도의 푸른 들판을 눈에 그려보며 지냈다.


  우리 동네에는 느티나무가 늘어선 가로수 길이 있다. 이 길을 걷노라면 불현듯 진도의 그 파 생각이 나곤 한다. 나무 밑을 메우고 있는 맥문동, 진도의 파처럼 푸른 맥문동과 만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날씨가 따뜻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영하의 추위 속에 푸른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 풀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아니, 대견스럽다.  


  나는 이 길을 가다가 문득문득 걸음을 멈추곤 한다. 이 겨울에 잎이 푸른 맥문동이 내 마음을 붙든다. 사람들은 흔히 지조의 상징으로 늘 푸른 소나무, 늘 푸른 대나무를 말한다. 맥문동은 소나무나 대나무의 위세를 생각하면 퍽 초라한 풀이다. 하지만 가녀린 몸으로 독한 추위를 견디며 푸른빛을 잃지 않는 그 점은 소나무나 대나무보다 못할 것도 없다.


  맥문동은 본래 숲 속 그늘진 곳에서나 겨우 볼 수 있었던 풀이다. 그런데 지금은 도시 여기저기에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우리 동네에는 맥문동이 퍽 많다. 공원이나 가로수 길, 아파트 단지 안 어디든 빈자리에 그늘진 곳이면 맥문동이다. 맥문동은 번듯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저를 내세우지 않는다. 본래 빈자리를 메우려고 심은 풀이다. 빈 틈새마다 눈에도 잘 안 띄게 심어 평소에는 사람들이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 여름날 라벤더처럼 생긴 보라색 꽃을 보고서야 “아, 이렇게 예쁜 꽃이 여기 있었네!” 하고 놀란다.


  맥문동꽃은 난초같이 생긴 이파리 위로 꽃대가 쑥 올라와 거기 보랏빛 작은 꽃들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꽃은 들꽃처럼 수수하게 예쁘다. 특히 맥문동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것을 보면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니다. 햇빛도 받지 못하는 곳에서 피어 더 감동적이다.


  오늘은 영하의 날씨에 바람마저 세차 독한 추위였는데, 나는 시장 가는 길에 또 맥문동을 보았다. 몸을 서로에게 바짝 붙이고 빽빽하게 서 있는 것들은 생기도 있고 힘차게 보였다. 그러나 기댈 곳 없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것들은 땅바닥에 온몸을 다 펴고 마치 오체투지(五體投地)하듯이 엎드려 있어서 보기에 딱했다.


  엎드려 있는 푸른 잎사귀를 보니 마치 젊은 나이에 직장을 구하지 못해 풀 죽은 청년 실업자 같기도 하고, 재주도 없으면서 글쓰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안간힘을 쓰는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찡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이 모진 추위를 어떻게 견디고 있니?”


  그들이 대답했다.


  “그냥 견뎌내고 있는 거예요. 봄을 가슴에 품고-.”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들은 잎들을 다 떨어뜨리고, 풀들은 땅속에 뿌리만 남긴 채 스스로 시들어버렸다. 봄이 되면 나무는 그 마른 가지에 새 이파리를 피워낼 것이다. 풀은 그 새싹이 땅을 뚫고 올라오게 할 것이다. 나무든 풀이든 다 그런 봄을 꿈꾸며 죽은 듯이 겨울을 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맥문동은 스스로 시듦이 없이 봄을 가슴에 품고 모진 겨울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다. 어쩌면 견디는 것이 포기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어려울지 모른다. 맥문동은 겨울에도 죽지 않는다고 해서 불사초(不死草)라고 한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불사초, 딱 맞는 이름이다.


  오늘 시장 가는 길에 맥문동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용기도 얻고 위로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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