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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암이란다

어느날 갑자기 맞이하게 된 존재

by 쌍기역

2024년 11월 18일 오전,

아빠께 전화가 왔다.

뭐하냐 묻고는 뭐 좀 알아봐라 하시길래 여느때처럼 쇼핑몰에서 뭘 주문해달라는 건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난소암 초기라는데 여기서 서울로 병원을 가보라고 하거든. 전화로도 알아볼 수 있다고 하니까 갈 수 있는 병원 좀 알아봐라"

"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언젠가, 아니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나?

엄마가 큰 병에 걸릴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나는 생각보다 덤덤했다. 아니, 침착했다고 해야 할을까?

아빠의 전화 내용은, 화순 전대병원에 갔는데 수술을 내년 5월에나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수술이 급하니 자식들이 서울의 병원 중 빨리 수술이 가능한 곳을 찾아 예약하라는 말이었다. 2주 내로.

의료파업이 아니더라도 과연 2주 내로 수술을 받을 수 있을까? 진료라도 보면 다행이지.

알겠다고 전화를 끊고 가장 먼저 생각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손꼽히는 병원은 진료가 어려울 것 같아, 갑자기 생각난 순천향대에 전화를 했다.

몇 가지의 절차를 거쳐 신속암센터에서 빠르게 예약을 마쳤다. 금요일에 전화걸어 다음주 목요일 오전으로 예약을 잡았다.


엄마가 지금까지 거의 쉴 틈 없이 일을 해오셨다. 다음주가 근무한지 1년이 되는 날이라 퇴직금을 받으려면 그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 상황에서 퇴직금이 무슨말이냐고 했지만, 엄마 마음은 그렇지 않다셔서 예약은 그 다음주 월요일로 변경되었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 해남으로 발령난 아빠를 따라 가셔서 아빠 뒷바라지와 언니를 돌보셨고, 나를 임신하고 출산할 즈음에는 다시 고향인 장흥으로 돌아오셨다. 장흥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결혼을 하지 않은 셋째,넷째 고모, 작은아빠와 함께 살았다. 이후 내가 6살때 읍내로 이사나와서 가게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0년이 넘도록, 60세 정년이 지나서도 일을 하셨다. 가게와 애넷육아를 병행하시다가 가게를 접고는 조리사 공부를 해서 시험에 합격하고, 그때부터 요양원, 병원, 요양병원 등에 근무하셨다.

중간에 손가락 수술로 그만두시기도 했고, 쉬는 날 없이 너무 고된 근무시간으로 가족들 성화에 그만두신 적도 있었다. 이제는 집에서 쉬라고 했지만, 한 달을 참지 못하고 엄마는 또 다른 곳에서 일을 시작하셨다. 거기가 지금 일하는 곳.


순천향대에 예약을 하고는 한양대, 차병원에 전화를 했지만, 당장 예약되는 곳은 없었고 다들 다음달 중순에야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진료자체가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수술은 언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따로 예약을 잡지는 않고 순천향대 예약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울지 않고, 내 자신도 놀랄만큼 침착하게 예약 및 문의전화를 끝냈다. 그런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뭔가가 올라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전화를 걸어놓고 말을 하지 않은 나에게 왜그러냐고 물었지만, 나는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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