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속에서... 3
사람의 삶에는 누구도 대신 들어가 줄 수 없는 방이 있다.
그 방 안에서는 두 사람이 평생에 걸쳐 만들어온 언어가 흐르고,
외부에서는 결코 들리지 않는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견디며 살아간다.
나는 어느 날 그 사실을 명확하게 깨달았다.
내 주변의 한 동생 부부가 있었다.
오랜 시간 가까이 지내며 술잔을 나누었고, 편하게 웃고 떠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동생이 아내에게 거칠게 대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고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그 장면은 나에게 오래 남았고, 결국 나는 따로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고.
그때는 그것이 맞다고 믿었다.
사랑이라면, 책임이라면, 존중이라면
그런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관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며
나는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사는 방식’이지, ‘그들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들은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서로에게 돌아가는 오랜 습관으로 연결된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균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외부에서 보면 불편한 장면일지라도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나름의 질서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 번 더 놀라운 사실을 마주했다.
그 동생의 아내는 그때의 일을 기억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우리 원래 그렇게 살아요.”
그 말에는 포기가 아니라 긍정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그 삶을 납득했고, 받아들였고, 그 안에서 나름의 평온을 찾고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사람의 삶은 옳고 그름으로 재단되지 않는다.
그 삶을 살아내는 사람에게 납득되는 방식인가, 아닌가가 있을 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누군가의 삶에 개입한다는 것은
단순히 조언하거나 걱정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복잡한 구조에 손을 대는 일이다.
그리고 그 구조는 겉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르다.
나는 그 사실을 뒤늦게 이해했다.
만약 내가 그때 더 깊이 개입했다면,
그들의 관계는 오히려 더 큰 균열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선의는 누군가에게는 침입이 될 수 있다.
나의 정의감은 누군가에게는 폭력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멈추기로 했다.
그들의 세계는 그들이 책임지고 살아내야 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세계의 문턱에 서서 바라보기만 할 뿐,
안으로 걸어 들어갈 자격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은 타인의 관계를 판단할 수 없다.
그 관계가 지탱되는 방식은 오직 그 안에 있는 사람들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은 나에게 큰 변화를 남겼다.
나는 더 이상 타인의 삶에 ‘이래야 한다’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살아내는 방식을 조용히 존중한다.
그들의 선택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선택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는다.
관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판단을 멈추는 일이다.
판단을 멈추는 일은
존중의 시작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선택한 방식으로 버티고, 견디고, 이어가는 시간의 문제라는 것.
그 깨달음은 오랜 시간 나를 괴롭히던 질문을 조용히 가라앉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들의 삶을 그들에게 돌려줘라.
그것이 사랑이고, 그것이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