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청소년기에 들어간 아이가 안 하던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 보통 사람들이 걱정을 한다. 그런데 진짜로 걱정해야 될 때는 청소년기에 들어선 아이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경우이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한다. 중2병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청소년기는 무섭다. 나 또한 그랬다. 나의 중학생 시절 반항은 어마어마했다. 이 세상의 상식이 싫었고 나만의 뚜렷한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서툴지만 자아가 탄생하는 시기, 이 시기에만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내면의 힘을 나는 경험으로 체험했다.
대강 중학교 1학년 말 혹은 중학교 2학년이 시작되던 시기였던 것 같다. 시기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과 그때의 일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그때 특목고와 자사고 입시를 준비하는 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학원에서는 선행 학습을 시켰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나는 물리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은 솔직하게 말해 나에게 너무 시시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시시하다는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 기억도 희미할 정도로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학원에서 선행학습으로 배운 물리는 재미있었다. 처음으로 배운 물리문제는 경사면에서 물체가 내려오는 문제였다. 중력이 작용하고 마찰력이 작용하고 경사면의 각도가 주어졌을 때 물체가 내려오는 가속도와 속도를 계산하는 문제였다. 단순한 문제였지만 그 문제를 푸는 방법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 세상에는 중력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이러한 중력들은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서 존재한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원리와 내가 물건을 떨어뜨렸을 때 가속되는 그 원리가 같다. 그리고 이러한 물리법칙들은 수학으로 표현할 수 있다. 중학생인 나에게 이는 진실로 놀라운 세상이었다.
그 시기에 나는 앞도 뒤도 보지 않고 물리학에 미친 듯이 빠져들어갔다. 특별히 나에게 물리학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굳이 꼽자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시켜주는 선생님 정도. 그래서 혼자 고등학교 문제집들을 보고 일상생활을 통해 원리를 깨우쳤다. 놀이공원에 가서 놀이기구가 돌아가는 역학의 법칙들을 생각했고 라면을 끓이다가 물이 끓는 원리에 대해 고민했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에서 규칙을 찾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풀어나가고 또 공부한 법칙을 이 세상에 적용시키며 자연법칙을 알아가는 것에 재미를 알아버렸다.
나에게 그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살던 지방 변두리에는 물리올림피아드를 준비시켜 주는 학원이 없었다는 것이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올림피아드를 준비시켜 줄 수 있는 선생님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수능 준비용 물리 문제집들을 많이 풀었다. 혼자서 독학으로 물리 2 내용을 익혀서 물리 수능 문제를 풀 수 있는 수준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뉴턴 같은, 아인슈타인 같은 그런 위대한 물리학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이야기지만 중2병에 걸렸던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빠져들어본 그 경험, 그 경험을 해본 이상 이전처럼 똑같이 살 수가 없어졌다. 나만의 세계를 한번 구축해 버린 이상 타인이 생각하는 잣대에 맞춰 살 수가 없어졌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든 싫든 상관없이 이공계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