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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May 19. 2024

견디기 힘든 과학고 생활

과학고에서 보낸 2년은 지금까지 내 인생 34년을 통틀어 가장 힘겨운 시간이었다. 박사 졸업을 준비하던 그 힘들었던 기간도 과학고 시절만큼 힘들지 않았다.


과학고에 입학하면서 나의 삶이 통째로 바뀌었는데 가장 중요한 변화는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숙사 생활은 나에게는 지옥과 다름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바쁜 부모님 아래에서 자유롭게 자란 나는 통제되고 때로는 감시당하는 듯한 느낌까지 드는 기숙사 생활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공부에도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물론 기숙사 생활이 주요한 원인이었지만 그것이 모든 원인의 전부는 아니었다. 과학고에는 당연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곳에서 내 실력이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다는 점이 내 좌절감을 증폭시켰다. 무엇이든 잘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신감과 성취감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잘하는 아이들 틈에서 나는 그것을 맛볼 기회를 잃었고 성적은 점점 더 떨어졌다. 성적이 떨어지자 더욱더 성취감을 잃게 되고 성적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학교에 갇히다시피 살며 하루종일 공부만 했고 대입에서도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과학고를 다니면서 공부 실력이 어느 정도는 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느껴질 만한 큰 성취는 과학고를 다니는 2년 기간 동안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나는 너무 괴로웠다. 그리고 이 시절 나에게는 자살 충동이라는 마음의 병까지 생겨버렸다.


그럼에도 좋은 점을 찾아보자면 정말 우수한 친구들과, 평생에 걸쳐 인연이 되는 친구들과 좋은 선생님 몇몇을 만난 것이다. 특히나 기숙사 생활로 힘들어하고 성적이 점점 떨어지는 나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져준 몇몇 선생님은 내가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마음의 감동으로 남았다.


나에게 과학고의 유일한 장점이었던 점은 조기졸업이 당시만 해도 과학고에서 꽤나 보편화되어 있었고 나는 조기졸업에 성공을 했다는 것이다. 비록 과학고 학생들 상당수가 진학하는 서카포, 즉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와 같은 학교는 진학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좋은 대학이라고 분류되는 학교에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진학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운이 참 좋았고 그것에 대해 평생 감사한다. 물론 좋은 대학에 입학한 것이 감사한 것이 아니라 과학고 생활을 2년 안에 마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조기졸업에 실패하고 3학년까지 고등학교를 다녀야 했으면 정말로 자살 충동이 아니라 빌딩에서 몸을 던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정신병동에 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대학 입학이 확정되고 하루는 별똥별이 많이 떨어진다고 해서 친구들과 함께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막막한 후회의 감정이 밀려들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후회스러웠다. 이 후회는 더 좋은 학교에 합격하지 못해서, 혹은 옆의 친구보다 더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진짜 가진 후회는 스스로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지 않은 것이었다.


최선을 다 하지 않은 후회. 스스로의 성장을 돕지 않은 후회. 비록 성적이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고 성취감을 맛보기가 힘들더라도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던 것이다. 주위의 잘난 친구들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나보다 더 나아자기 위해 성장을 도모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물밀듯이 들었다.


19살의 겨울, 별이 쏟아지는 날 밤, 앞으로 내 삶에 무슨 일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내 삶을 위해 간절한 맹세를 했다. 언제나 스스로를 위해 최선을 다한 삶을 살겠노라고. 노력의 결과가 나를 배신하더라도, 최선을 다해는 것이 바보 같아도 그렇게 살겠노라고. 절대로 지금과 같은 후회를 다시는 하지 않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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