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 읽는 엔지니어 May 26. 2024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대학에 입학한 후에 나에게 가장 중요하게 주어진 미션은 진짜 내가 앞으로 가질 직업에 대해 결정하는 것이었다. 중학생 때 막연하게 물리학자기 되기를 원한 것이 꿈을 꾼 것이라면 이제는 현실에서의 직업을 정해야 하고 그에 따른 노력을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었다. 


물론 직업을 정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19살의 나는 그런 현실감각보다는 이상이 앞서는 젊은이였다. 그래서 나의 능력보다는 이상적인 상황을 상상하며 마음껏 미래를 계획해 보곤 했다.


의학전문대학원에 가서 의사가 되는 것에 대해서 깊게 고민했었다. 지금은 다시 의대 체제로 돌아왔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시절에는 의학전문대학원 체제였고 그래서 과학고 출신들을 포함해서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은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나는 어린 시절부터 살아있는 생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곤충은 물론이고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동물들도 싫어했다. 심지어 지금은 강아지 키우는 게 일상인 미국에 살면서도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로 하지 못할 직업이 있다면 아마도 수의사와 생물학자일 것이다. 그리고 의사가 되는 것도 인간을 살아있는 생물로써 대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나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되고 싶은 의사가 있었는데 정신과 의사였다. 나는 유독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해 과도하게 깊게 생각하고 분석하는 버릇이 있었다. 과학고 시절 처절하게 죽고 싶었던 경험 또한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서 의전원에 진학하는 것은 내가 희망했던 진로 중에 하나였다.


또 다르게 고려했던 진로는 로스쿨에 입학해서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로스쿨 체제가 막 시작되어 생소하던 시기였고 여전히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대학생들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물리학자를 꿈꾸었고 과학고를 졸업하고 공대에 다니고 있는 배경 속에서 인생을 확 바꿀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었었다. 로스쿨에 만약 진학한다면 과학고와 이공계 출신 변호사로 나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이 생각에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공대 이외에 다른 학과 사람들을 만나면서였다. 막상 문과 친구들과 어울릴 때 나는 늘 이방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 보고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로스쿨과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또한 했다.


대학을 다닐 때 나는 기술고시를 봐서 고위 공무원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계기는 인터넷에서 본 고위 공무원의 글이었는데 그가 말하는 고시 수험생활, 그리고 공직을 하면서 느끼는 것들 이런 것들에 대한 솔직한 글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국가기관에 소속되어 일하면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창 9급 공무원 7급 공무원을 포함해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치솟을 때이기도 했다.  내 전공을 살려 기술고시를 통해 공직을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생각에 의심을 품게 된 것은 또 인터넷의 글을 통해서였다.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글이었는데 아주 강한 의지와 좋은 공부습관이 없으면 잘못하다가는 고시 준비를 한다고 해놓고 그냥 백수처럼 지내게 된다는 말이었다. 지금 고시 공부를 하겠다고 대학을 휴학하고 시험 준비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니 나도 그냥 무늬만 고시준비생인 백수 신분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순간 몰려왔다. 사실 혼자서 수험 공부를 해본 적이 없었고 체질적으로 수험 공부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기술 고시에 도전해 보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망설였다.


그리고 이런 많은 고민 가운데에서도 한 가지가 빠져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내가 진짜로 꿈꾸었던 것 이공계에서 뭔가를 해보겠다는 어릴 적 꿈을 나는 외면 할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이제 더 이상 없어졌지만 그럼에도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살아가는 방법은, 내가 나 다움으로 특별해지는 방법은 이공계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자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직업을 해도 각자의 보람과 즐거움 그리고 힘듦이 있어 보였다. 그렇다면 이것저것 비교하고 재면서 물건 고르듯이 정하는 게 아니라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철저하게 나답게 살 수 있는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다움은 바로 이공계에서 세상의 문제를 풀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박사 유학을 꿈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부를 마치자마자 그렇게 빨리 유학을 가게 될 줄은 이때만 해도 꿈에도 몰랐다. 한국에서 석사를 하고 기회가 되면 미국에 가서 박사를 해야지 막연히 생각했다.


간혹 대학시절이 그리운 이유는 나의 미래에 대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았다는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며 이런저런 직업과 나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이제 30대 중반이 되어버린 나는 다양하고 색다른 꿈을 꿔봐도 더 이상 실현가능 하지 않다는 현실을 너무 잘 알기에 더 이상 다른 길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저런 직업을 고려해 보는 것은 대학시절에만 해볼 수 있는 사치였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서 정말로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면 지금은 삶은 어떠했을까? 내가 로스쿨에 합격해서 지금 변호사가 되었다면 나의 지금은 어떨까? 기술고시에 합격해서 고위 공무원이 되었다면 나의 삶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그 길을 가보지 않았기에 때때로 더욱더 내가 다른 길을 택했다면?이라는 상상에 빠져들곤 한다.


물론 이런 모든 상상들은 내가 원했던 대로 원하던 꿈을 이뤘을 때 상상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 대로 목표한 대로 그것을 실현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연구자가 되겠다는 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배울 수 있었다.


대학원을 가서 연구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공대 전공공부를 하는 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걸 심지어 나는 잘하고 싶어 했으니 고통은 몇 배가 되었다. 누군가의 대학시절은 낭만이 함께 했겠지만 나에게는 학업 스트레스와 좌절이 함께했던 대학 생활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전 05화 하루 만에 대학 전공을 택해버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