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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Jun 01. 2024

좌절의 대학생활

공대에서 박사학위까지 하고 연구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실적으로 우선 학부과정에서 배우는 공부를 잘 해내야 했다. 문제는 나는 그걸 잘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전기전자공학의 전공 공부는 쉽지 않았다. 내가 다닌 대학은 한국에서 나름대로 수재들이 모여드는 학교였고 마치 과학고를 다니던 시절 나보다 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을 만나 좌절한 것처럼 나는 또다시 나보다 더 전공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을 보며 좌절했다. 그리고 그 좌절은 더욱더 공부 의지를 꺾는 악순환에 또다시 빠져들었다. 하지만 다시는 과학고 때의 실수를 반복할 수 없었다. 과학고를 졸업하기 전 다시는 후회하는 일을 만들지 않겠노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기로 결심했었다.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포기해서는 안되었다. 물론 죽이 되어서 재수강을 하거나 낮은 학점을 받는 과목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도서관에 앉아 책과 씨름하는 과정 그 자체에 의미를 두려고 노력했다. 


어느 학기에는 아예 학교 도서관에 매일 일정한 시간에 가서 같은 자리에 앉아 공부를 했는데 나처럼 그렇게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와서 공부를 하는 학생은 그 도서관에서 사법 고시를 준비하는 법대생들밖에 없었다. 남들이 2시간 하는 공부를 나는 4시간에 걸쳐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나의 능력과 미래에 대한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괴감에 빠져들 때가 더 많았다. 모든 과목에서 겨우겨우 따라가는 것뿐이었다. 한 과목이라도 잘해야 그 분야를 연구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정말이지 잘하는 과목이 하나도 없었다.


전기전자 전공에서는 다양한 과목들을 배웠었다. 데이터 구조라는 과목에서는 기본적인 알고리즘에 대한 것을 배웠다. 강의를 듣는 것은 흥미가 있었고 시험을 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었지만 나에게 큰 문제는 과제로 나오는 프로그래밍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두 명이 함께 해내야 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나도 열심히 했지만 나와 함께 하는 친구가 훨씬 잘했다. 앞으로 내가 이 분야를 연구해서는 경쟁력이 없을 것 같았다. 회로이론이라는 과목에서는 회로를 해석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굉장히 많은 문제풀이와 연습이 필요한 과목이었다. 나에게는 이 과목이 너무나 지겹고 딱딱했다. 숨이 막힐 것 같아서 앞으로 더는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디지털 회로라는 과목에서는 0과 1로 다양한 시스템을 구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0과 1로 무언가를 구현해 내는 것 책을 보며 배울 때는 나쁘지 않았는데 막상 시험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돼서 제대로 문제를 풀지 못했다. 신호 및 시스템이라는 과목은 그야말로 수학 공부의 연속인 과목이자 후에 신호처리와 통신이론의 기초가 되는 과목이었다. 사실 이 과목을 배우는 것은 나쁘지 않았는데 그 이후에 배우는 신호처리와 통신이론이라는 과목들을 배우고 싶지 않아서 이 분야도 포기해 보였다. 전자기학이라는 과목은 그나마 내가 할만했던 과목이었다. 물리적으로 전자기적 현상을 해석하는 것은 나름의 재미가 있었는데 문제는 전자기학 이후에 이 과목과 연결되는 그다음 과목들이 나에게 너무 어려운 과목일 것 같아 지레 겁을 먹고 또 포기해 버렸다. 반도체 물성을 다루는 과목을 듣고 반도체 소자나 공정등을 연구해 볼까도 생각하며 관련 과목을 들어봤지만 잘 따라가지 못해 결국 이해를 하나도 못한 채로 달달 외워서 겨우겨우 시험을 치른 후에 다시는 보지 않게 되었다.


역시 공학 박사를 하고 연구자가 되겠다는 목표는, 유학을 가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 보겠다는 목표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걸까?라는 고민이 때때로 찾아왔다. 성취감보다는 좌절이 더 크던 대학생활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꿈만 꾸고 살 수 없는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무언가를 해나가던가 아니면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현실적으로 연구자가 되겠다는 꿈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찾아왔다. 이 길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면 하루라도 빨리 다른 무엇이든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나의 가능성이 겨우 여기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혹시 지금 내가 있는 대학이 아니라 다른 대학에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과목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나도 해외 교환학생을 지원해 볼까? 하는 생각이 어느 날 들었다. 아버지가 교환학생 가는 걸 말렸지만 어머니께 조르고 또 졸라서 한 학기 동안 미국 교환학생에 갈 여비를 마련했다. 미국 대학에 가서도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전공과목을 찾지 못하면 이제 다른 길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교환 학생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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