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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Jun 08. 2024

미국 유학을 떠나다

나는 유학을 학부를 마치자마자 나갈 계획은 없었다. 한국에서 석사를 하고 좋은 연구성과를 만들어 박사 유학을 가면 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교환학생에서 한 가지 크게 생각이 바뀌었는데 반드시 미국 명문대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교환학생을 간 학교는 그리 높은 순위의 대학이 아니었지만 그곳에서도 좋은 연구 그리고 좋은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문대를 고집하지 말고 어떤 방식으로든 하루라도 빨리 유학을 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돈이 문제가 된다면 한국에서 취업을 해서 경력과 함께 돈을 모으거나 아니면 석사학생도 조교 등을 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유학이 아니라 대학원 진학 자체를 완고하게 반대하셨다. 교수밑에서 고생하는 일이라고 너는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절대로 안된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가 한국에서 살면서 보다 편한 길을 택하길 바랐다. 하지만 이미 교환학생까지 다녀와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겠다는 확인이 선 나는 이번에는 물러설 수 없었다. 대학을 지원하던 고등학교 2학년때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대학 원서를 썼지만 대학을 졸업하는 25살이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기에는 너무 성벽이 튼튼한 나만의 세상을 구축해 버린 후였다. 결국 이번에는 아버지가 고집을 꺾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버지는 나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오히려 유학에 아버지가 더 적극적이 되었다. 이왕 공부를 하려면 좋은 환경에서 해야 하고 그래서 미국 석사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나는 미국 시골에 있는 학비도 생활비도 비싸지 않으면서 전력전자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한 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내가 입학한 학교의 전기공학과는 석사 학생도 운이 좋으면 수업 조교를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 수 있는 학교였으니 나에게는 그야말로 천운이 따른 것이었다.


그렇게 떠난 석사 유학에서 나는 정말이지 절박했다. 우리 집은 나를 유학 보낼 정도로 형편이 넉넉한 집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평생 힘들게 모아 온 노후자금의 일부를 내가 유학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석사유학은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여기서의 실패는 내 인생에서 회복될 수 없는 실패일 게 분명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방학이 되면 잠시 여행을 가는 유학생들도 있었지만 나에게 그런 것들은 사치였다.


내가 진학한 학교는 전력전자 분야에 좋은 교수진과 많은 수업이 열리는 학교였다. 유학을 떠날 때만 해도 개론 정도에 불과한 학부수업 수준도 버벅거리는 수준에서 유학 2년 정도만에 몇 개의 대학원 레벨의 전력전자 수업을 듣고 나서 지식과 실력이 가파르게 늘었다. 하고 싶은 공부를 즐겁게 하다 보니 하루하루 성장의 기쁨 또한 만끽했다. 물론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겪은 많은 좌절과 실망으로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는 법에는 이미 익숙했다.


특히나 가장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람을 통해 배우는 것이었다. 내가 진학한 대학원은 전력전자라는 분야의 대가라 불리는 교수들이 있는 학교였다. 수업 시간에 그들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통찰력 등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었다. 교과서를 통해서는 이론과 해답만을 배웠다면 수업 시간에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들이 소중했다. 때때로 교수님이 하는 한두 마디의 통찰력 있는 말들이 막혀있는 내 머릿속을 뚫는 것 같을 때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좋은 친구, 선후배들을 사귀면서 내 실력 또한 빠르게 늘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그랬듯이 집안 형편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지만 새로운 미래를 위해 인생을 걸고 유학 온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통하는 게 많았고 무엇보다 적어도 전력전자라는 과목 안에서 친구들의 실력은 나보다 앞서 있었다. 그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무엇이든 정말 잘 가르쳐주었다. 이상하게도 그때 나는 친구들을 빨리 따라잡아야겠다는 경쟁심이 없었다. 대신 이 친구들과 함께라면 유학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늘 배우려고 했고 그래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어떤 자료를 보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공부 범위와 방법부터 석박사 기간 동안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사소한 생활습관까지 모두 배웠다. 내가 무사히 석박사 졸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의 8할은 이때 만난 친구들 덕이었다.


유학 온 이후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성장과 보람으로 가득 찬 나날들이었다. 이런 기회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잘 알기에 힘든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원 공부는 수업을 듣고 학점을 잘 받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연구를 시작해야 했다. 일단 먼저 지도교수를 찾아야 했다. 아무 경력도, 논문실적도 딱히 없는 나를 어느 교수가 받아서 연구지도를 해줄 것인가? 


진짜 내 유학의 성패는 연구에서 결론이 날 것이었다. 물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체 그냥 들이박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지도교수가 되어줄 교수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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