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전력전자를 공부하던 대학원 친구들이 모두 미국에서 인턴 기회를 찾기 시작하면서 어쩌다 보니 나도 인턴 찾기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나는 원래 남들이 한다고 해서 따라 하는 성격이 전혀 아닌데 주위에 인턴을 이미 다녀온 사람들이 미국에서 인턴을 반드시 해보라면서 강력하게 추천을 했다.
그런데 인턴 자리 하나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선 미국 시민이나 영주권자가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미국에서 회사를 지원할 때는 어떤 회사든지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이 신분 문제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공학 석박사들 중에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는 많지 않았고 때문에 외국인 유학생 신분임에도 인턴 그리고 이후에는 정규직으로 채용하고자 하는 회사들 또한 꽤 많았다. 내 주위 친구들 또한 모두 외국인 신분으로 인턴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를 보면서 힘을 냈고 인턴 자리 찾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외국인 신분이라는 단점은 나만이 아니라 많은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였고 공학 석박사에게는 외국인에게도 기회가 열려 있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미국 회사에 인턴 기회를 잡기 위해서 필수로 거쳐야 하는 테크니컬 면접을 난 통과할 실력이 안되었던 것이었다.
테크니컬 면접이라고 함은 회사에서 일할 때 필요한 전공 지식을 물어보고 나의 실력을 검증하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학점도 잘 받고 연구도 나름대로 잘 진행하고 있었지만 인턴을 잡기 위해 보는 전공 실력 검증에서는 번번이 떨어졌다. 정말 많은 전공 면접을 봤는데 정말 많이 탈락했다.
이유는 이랬다. 나는 늘 시험을 보기 위해서, 누군가가 세워둔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 교수가 요구한 것을 다 해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내가 내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마인드로 공부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공부하고 배운 지식들이 많더라도 막상 실제 현업에서 쓰는 전공 지식을 물어보면 제대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어렵지 않게 테크니컬 면접을 통과하고 하나둘씩 인턴을 잡으면서 나 또한 더욱더 절박해졌다. 그래서 전공 면접을 통과하기 위한 공부를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일하면서 써먹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을 알아서 찾아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자료도 공부하고 인터넷 강의도 들었으며 친구들에게 물어봐서 모르는 것을 깨우치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동안 비록 남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한 공부이지만 이제껏 많은 공부를 해왔기에 크게 어렵지 않게 나의 진짜 실력을 키워줄 공부를 해나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인턴 합격은 쉽게 되지 않았다. 이때 나의 주변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함을 알았다. 한 종류는 나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고 다른 종류의 사람들은 나의 용기를 꺾으려는 사람들이었다. 언젠가는 될 거니 끝까지 열심히 지원을 해보라는 사람들이 있었고 외국인이 미국에서 일하기는 불가능하다며 나의 용기를 꺾는 사람이 있었다. 다행히도 나의 주변에는 용기를 꺾는 사람보다는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많은 탈락들에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나는 지원하고 면접보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어느새 여름방학은 다가왔고 다른 대학원생들 대다수가 기업 인턴에 합격해서 인턴을 하러 떠나거나 혹은 연구를 위해 자의로 학교에 남는 시기가 다가왔다. 나처럼 인턴 기회를 너무나 얻고 싶었는데 얻지 못해 학교에 남은 학생은 나뿐인 것 같았다. 오죽 내가 불쌍해 보였으면 한 친구는 인턴을 가기 전날 밤에 나에게 밥을 사겠다며 나를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선결제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친구가 밥을 사고 밥값을 지불하고 우리는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인턴을 떠나는 친구를 쓸쓸한 마음으로 배웅해 주던 그때 내 휴대폰에 이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인턴 합격 소식이었다. 비록 한 스타트업의 작은 인턴자리였지만 나에게는 감지덕지였다. 그러자 나의 인턴 찾기 과정을 쭉 지켜봤던 밥을 산 그 친구가 한마디를 던졌다. "이 밥은 네가 사야 되는 거 아니냐?"
그렇게 나는 아주 어렵게 미국에서 일을 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 인턴 합격은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이었다. 비록 작은 스타트업의 3개월짜리 짧은 인턴이었지만 내가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얻은 일자리였다. 인턴을 찾는 과정은 스스로 필요한 전공 공부를 찾아서 했던 귀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그렇게 어렵게 얻은 기회를 살려야 할 시간이었다. 미국 회사는 어떤 모습일까?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기다렸다.